폴린 그린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장 “경제난 속 고용 창출, 협동조합 활성화가 대안될 것”
입력 2013-06-30 18:27 수정 2013-06-30 22:53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각국 정부가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쓴 천문학적인 자금의 일부만이라도 풀뿌리 경제인 협동조합에 지원했다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을 것이다.”
전 세계 10억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국제협동조합연맹 폴린 그린(65·여·영국) 회장은 6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그린 회장은 협동조합을 통해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존 기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뚫고 고용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농협중앙회가 주관한 국제협동조합연맹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린 회장을 28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만났다.
-지난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였다. 협동조합은 최근 어떤 과정과 변화가 있었나.
“협동조합의 해를 거치면서 협동조합의 장점이 무엇인지 더 절실히 깨닫게 됐다. 협동조합들은 결속의 강도가 더 커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협동조합들이 외부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협동조합 운동이 각국의 국내 및 세계 경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적인 대형 금융기관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금융 협동조합들은 선진국에서 지난 5년 동안 굉장한 성공을 거뒀고, 자산과 예치금 및 대출 규모가 증가했다. 세계 경제에 협동조합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과 실업률이 높고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조합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협동조합은 세계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이 가운데 한국의 역할은.
“세계적으로 보면 협동조합운동은 굉장히 규모가 크다. 조합원은 10억명에 이르고 협동조합에 고용된 근로자는 1억명 이상이다. 300대 협동조합의 매출을 합하면 2조 달러에 이른다. 협동조합의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연맹은 이런 협동조합의 위상을 제대로 알려야 할 임무를 갖고 있다. 여기에 한국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들이 앞장서 협동조합의 중요성을 알려줬으면 한다. 협동조합은 민주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민주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생 협동조합을 위해 기존 협동조합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전통 있는 협동조합들은 신생 조합을 지원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협동조합은 50년 전엔 생각도 하지 못한 분야에서 만들어진다. 그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사업 계획에 대한 멘토링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나라인 영국의 예를 들면 전통적인 조합들이 1년에 100만 파운드를 출자해 협동조합 허브를 만들었다.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 이를 들어보고 타당하면 창업 초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지원을 받은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생조합을 이끄는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창의성을 계속 싹 틔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붐이라고 할 정도로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협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보나.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섯 명이 모여서 손쉽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제 환경이 정비된 것은 한국인들에게 축복이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 농협 등 기존 협동조합들이 한국은 물론 세계 협동조합운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의 농협은 지난 세월 빈곤 퇴치와 양질의 농산물 제공, 금융 분야의 기여 등 훌륭한 일을 해왔다. 한국의 수협은 어민들을 위해 기상 정보 등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아이쿱 생협은 사람과 환경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혁신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의 협동조합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와 조합원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SNS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협동조합의 가치가 무엇인지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원칙과 가치는 우리 조합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주를 위해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인 기존의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
-한국 정부는 협동조합을 일자리 창출의 유력한 대안으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는 불황을 타개하고 일자리를 늘리려 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에 매우 유용하다. 조합원 100명 미만의 소규모 조합이 많은데 이런 조합은 풀뿌리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협동조합은 미래에도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각국 정부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부실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그중 일부만이라도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데 썼으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풀뿌리 경제에 대한 지원이 미약하다. 이것이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관 이력이 눈에 띈다. 경찰과 협동조합운동은 얼핏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데 어떻게 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들게 됐나.
“내 얼굴이 좀 경찰처럼 생겼나. 하하. 사실 난 경찰뿐만 아니라 비서, 시간제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신념에 따라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런던 경찰의 이미지는 보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우파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경찰로 재직하는 동안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서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협동조합운동은 그런 내 신념과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