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현장의 DNA는 말한다… “완전범죄 꿈도 꾸지마”

입력 2013-06-30 18:11 수정 2013-06-30 22:58


지난 2월 김모(28)씨는 강원도 춘천 소양로의 한 식당에 창문을 열고 들어가 현금 1만8000원과 15만원짜리 등산화를 훔쳤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안심하고 있던 그는 2개월 뒤 경찰에 검거됐다. 피해액 16만8000원의 좀도둑을 잡은 건 DNA였다. 김씨는 범행 현장에서 낡은 운동화를 벗어버리고 훔친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이 운동화를 주운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더니 안쪽에서 김씨의 피부조직이 나와 DNA가 검출됐다.

2011년 6월부터 부산 강서구 일대 고물상 4곳에서 구리전선 12t과 트럭 3대를 훔친 김모(55)씨. 매번 검은 비닐로 CCTV를 가린 뒤 범행했고, 범행 후에는 착용했던 마스크와 신발 등을 모두 태우며 치밀하게 증거를 없앴다. 1년 넘게 경찰 추적을 따돌렸던 그도 현장에 무심코 흘린 목장갑 때문에 붙잡혔다. 국과수는 장갑에 묻어 있던 피부조직과 땀에서 김씨의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범죄 수사를 위해 DNA 채취·보관을 허용하는 ‘DNA법’이 2010년 시행된 뒤 지금까지 1600여건의 범죄가 DNA 분석으로 해결됐다. 한 달에 50건꼴이다. 예전 같으면 대충 넘어갔을 좀도둑이나 단순 절도범도 DNA 수사에 속속 덜미를 잡히고 있다. 최근에는 DNA 분석기간이 50일에서 20일 이내로 단축돼 도둑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혈액과 정액은 물론 비듬, 손톱, 각질, 소변, 대변(혈액이 섞여 나올 경우), 입을 댄 컵, 담배꽁초 등 DNA를 추출할 수 있는 증거물은 다양하다. 국과수 유전자감식센터는 최근 한국법과학회지에 ‘절도 감정물 시료 종류 및 채취 방법에 따른 분류와 DNA형 검출률 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 2월까지 경찰이 국과수에 DNA 분석을 의뢰한 절도사건 증거물은 모두 5681종이었다. 가장 많은 건 범인이 절도 현장에서 만진 공구 등 ‘접촉 증거물’(3120종)로 32.7%가 DNA 검출에 성공했다.

증거물에서 타액이 확인된 경우(담배꽁초, 컵 등)는 1998종이었고 DNA 검출 성공률은 85.9%였다. 혈흔이 묻은 증거물은 277종 가운데 270종(97.5%)에서 DNA가 확인돼 검출률이 가장 높았다. 실제 지난 2월 경기도 포천에서 식당 금고를 턴 박모씨는 CCTV에 얼굴이 찍히지 않았고 지문도 남기지 않았지만 금고에서 돈을 꺼내다 무심코 뱉은 침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잇몸병을 앓아 침에 섞여 있던 소량의 피가 결정적 단서였다.

국과수의 DNA 검출은 시료(試料)를 얻는 데서 시작한다. 피나 침, 땀 등이 묻은 곳을 멸균면봉으로 문지르거나 피부조직이 발견된 의류의 일부를 잘라낸다. 이런 시료에서 세포핵을 추출하고 거기서 얻은 DNA를 확대 복사한다. 이를 용의자의 구강상피세포나 칫솔, 수건 등에서 뽑아낸 DNA와 비교해 일치하면 증거로 채택된다. 국과수 관계자는 30일 “DNA 특성(염기서열)이 똑같은 두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100억분의 1로 사실상 없다”며 “DNA 정보가 갈수록 축적되고 분석기법도 빠르게 발전해 오래전 사건이 DNA 수사로 해결되는 경우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