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訪中] 과거사 침묵 관례 깬 朴, “유해송환” 미래지향적 제의
입력 2013-06-30 18:36
수교 이후 21년이 지난 대한민국과 중국은 향후 미래 20년을 논의하는 사이가 됐지만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으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적국’ 관계였다. 당시 우리 군을 포함한 연합군은 물론이고 국가의 명령으로 낯선 땅을 밟은 중국 젊은이들은 한반도에서 무수한 피를 흘리고 스러졌다. 한·중이 전방위로 협력을 추진하면서도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만큼은 분명한 한계에 부닥치는 이유다.
반세기 전 과거사에 대해 언급을 꺼리던 관례를 박근혜 대통령이 깨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29일 베이징(北京) 소재 칭화대(淸華大) 연설 직전 류옌둥(劉延東) 부총리와 환담하면서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다. 중공군 유해 360구가 한국에 있다”며 “한국 정부가 그동안 잘 관리해 왔다. 그런데 중국의 유족이나 가족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있을 것 같다. 유해를 송환해드리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께 말씀드리려 했는데 빠진 게 좀 있다”고 덧붙였다. 류 부총리는 “대통령님께 너무 감사하다. 한국 정부의 특별한 배려와 대통령님의 우의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며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제가 바로 시 주석께 보고 드리겠다”고 감사를 표했다.
박 대통령이 전격 송환 의사를 전한 중공군 유해는 경기도 파주 ‘북한군·중국군 묘지’에 묻혀 있다. 일반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 묘지는 최근까지 우리 군이 ‘적군묘지’라고 불렀다. 교전 중 사망한 적군 유해도 묘지로 관리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96년 조성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대부분 ‘무명인’이라는 비목이 세워진 묘지는 총 1100여개로 중공군 유해와 함께 6·25 이후 남파된 무장공비, KAL기 폭파범 등을 포함한 북한군 유해가 묻혀 있다.
81년 이래 남한에서 발굴된 중공군 유해는 403구로 97년까지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 측으로 43구가 송환됐다. 당시에는 남북한과 중국 모두에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조용하게 처리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안했고,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이어서 유해 송환은 한·중 간 직접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도 한반도에서는 중공군 유해가 수시로 발굴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의 제안을 계기로 한·중 유해송환 절차가 정례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박 대통령은 같은 날 산시(陝西)성 성도 시안(西安)에서 자오정융(趙正永) 당서기, 러우친젠(婁勤儉) 성장과 면담 및 만찬을 함께하며 우리 광복군 주둔지 터에 표지석 설치를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은 시안 창안구(長安區) 두취진(杜曲鎭)에 주둔한 바 있고,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표지석 설치 사업을 추진해 왔다.
자오 당서기는 “한국과 중국이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한 역사를 소중히 여긴다”면서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