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政熱經熱

입력 2013-06-30 19:07

정치적으로는 멀어도 경제교류 열기는 높다는 뜻의 ‘정랭경열(政冷經熱)’은 과거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그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이 쓰면서 일반화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근 중국에선 일본뿐 아니라 영유권 분쟁으로 냉랭해진 동남아시아와의 관계를 지칭할 때도 이 표현을 사용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정경분리(政經分離)’는 1960년대에 일본 정부 내에서 주로 나오던 표현이다. 국교 수립 이전에 중·일 간 무역이 활성화되자 대만이 일본의 이중정책을 비난했고, 일본이 대응하면서 이 표현을 썼다. 정경분리는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 원칙이기도 하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정경불가분(政經不可分)’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나눌 수 없는 만큼 정치·안보 분야의 관계 개선이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과거 중·일 관계에서 사용됐던 정랭경열이라는 말은 최근 몇 년 동안은 한·중 관계에서도 자주 사용됐다. 1992년 국교 수립 이후 양국 간 교역이나 인적 왕래 등은 뜨거울 만큼 뜨거워졌는데 정치 분야만큼은 이를 따라오지 못했던 탓이다. 사실 북한이라는 중대 변수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2008년 두 나라 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음에도 정치 분야는 유독 냉랭했다.

그런데 한·중 수교 역사가 성년을 넘은 올해 들어선 분위기 변화가 확연히 느껴진다. 양국 모두 새로운 지도자가 나온 뒤 상호 신뢰를 강조하면서 한층 친밀감이 형성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정치·안보 분야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단적인 예가 한·중 정상 간 전략대화 관계를 구축키로 한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오랜 친구를 뜻하는 ‘라오펑요우(老朋友)’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유대와 신뢰가 있어야만 불릴 수 있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정치와 경제 모두 뜨거운 ‘정열경열(政熱經熱)’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이제 정열경열로 만들어야 할 또 하나의 관계는 한·일관계일 듯하다. 여기엔 일본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추는 게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 우익세력의 망언과 행동을 보면 그런 날이 쉽게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