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입력 2013-06-30 17:16 수정 2013-06-30 17:27
마태복음 5장 1∼4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대중들에게 하신 첫 번째 설교 내용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나옵니다. 주님께서 처음 하신 설교는 여덟 가지 복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두 번째 복,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입니다. 애통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슬픔을 말합니다. 희랍어로 ‘펜데오’입니다. 이 말은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위로받을 길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인간의 어떤 위로도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도 자식과 같이 저승에 가겠다고 했을 때의 심정이 애통입니다(창 37:34∼35).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복 받는 사람의 조건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산상팔복 말씀(마 5:1∼12)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모든 팔복의 말씀 앞에 전제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를 넣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애통하는 자’라고 할 때 그냥 자신이 이 세상에 살면서 겪는 이런 저런 괴로움과 고통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내 인생에 비칩니다. 그러자 나의 온갖 죄가 보입니다. 얼마나 오염되어서 살아왔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를 세워놓고, 하나님이라는 저울에 나를 달아 봅니다. 그러자 온통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회개할 것투성이입니다. 그러한 자신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해야 우리는 과거의 죄악, 세상의 가치, 악한 권세와 결별하게 됩니다. 바울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잘나갔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빛에 비추고 보니까 그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졌습니다(빌 3:4∼8). 이렇게 죄에게 종노릇하며 살았던 인생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애통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애통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존재로 살게 됩니다(벧전 2:16). 애통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로 살아갑니다(빌 3:20). 이제 자신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관심과 생각도 애통하기 이전과 달라집니다. 영적인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되어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롬 8:5). 그때 하늘의 위로를 받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애통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애통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은 감정의 문제도 아닙니다.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니고, 염세적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죄악에 파묻혀 있던 나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롬 6:6).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부족하고 중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영적인 인생으로 사는 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권오성 목사 (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