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차 한·독 통일자문위 벤트만·슈뢰더 위원

입력 2013-06-30 18:46 수정 2013-06-30 22:54


“獨처럼 갑작스런 통일 없어야… 점진적 접근 필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으로 분단된 국가는 한국과 독일이다. 냉전이 끝난 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93년 통독연대연합이 체결됨에 따라 실질적인 통일을 이룬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으로 갈린 채 끝없는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7∼28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 호텔에서 한·독 양국의 통일 관련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가 참여한 제3차 한·독 통일자문위원회가 열렸다. 국민일보는 이 회의에 참석한 요르크 벤트만 독일 연방 내무부 실장과 90년 동독의 서독 연방 가입을 승인한 동독의 마지막 인민의회 사민당 원내총무인 리하르트 슈뢰더를 만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만난 사람=신종수 산업부장

-남북 간 대화가 중단돼 있다. 개성공단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남북관계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어떻게 보는가.

△슈뢰더=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동·서독이 대화가 잘됐든 안됐든 시기와 상관없이 우편과 전화는 통했다는 것이다. 서독 주민의 동독 방문이 많았고 동독 주민도 제한적이지만 서독 방문이 있었다. 한국처럼 완전히 단절된 경우는 없었다. 남북한도 우편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벤트만=관찰자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역사를 보면 나쁠 수 있고 좋은 굴곡이 있었다. 동·서독도 굴곡이 있었다. 그런 것을 당연히 전제로 해서 봐야 한다.

-북한을 놓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주 심하다. 통일 추진 과정에서 두 세력은 어떤 시각과 자세를 가져야 하나.

△벤트만=사실 민주주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토의하는 게 살아있는 민주주의다. 남한에서도 보수와 진보 모두 통일이라는 큰 틀에 대해선 합의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이견이 있는 게 아닌가. 이견에 대해 토론하면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무조건 남북대화가 옳은가, 아니면 상대방이 태도를 바꿔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자세가 더 효율적인가. 개성공단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슈뢰더=전제조건 없이 일단 대화는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합의가 이뤄지면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이 있어야 대화를 하는 게 좋다. 다시 개성공단이 가동됐으면 좋겠다. 개성공단은 일종의 실험이다. 북한이 저임금 국가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면 남한과의 경제 격차도 완화돼서 더욱 좋다. 빨리 가동됐으면 좋겠다.

△벤트만=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대화에 접근하든, 다른 것을 갖고 접근하든 어떻게 해서든지 대화를 해서 남북 간 신뢰의 토대를 쌓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인적 교류도 끊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옛 동독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교회에서 통일은 위한 작은 기도회가 결국 거대한 통일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교회의 역할과 함께 통일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소명의식 등 기독교적 정신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벤트만=니콜라이교회뿐 아니라 많은 동독 교회에서 평화 기도가 있었고, 이것이 나중에 시위로 발전했다. 당시 동독에선 시위를 하면 체포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런데 동독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고 보호했다. 가톨릭은 보수적이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교회가 재야 세력의 집합소 역할을 했다. 독일 통일의 큰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소명의식과 관련해 독일에선 나치시대에도 독재에 저항하는 전통이 있었다. 독재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 철학자 중 한나 아렌트라는 여류 학자가 있다. 이런 사상가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슈뢰더=동독에서 교회는 공산당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가 동·서독 인적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다. 서베를린에 있는 교회가 동베를린 지역 교회에 가서 같이 봉사하고 협력하는 등 인적교류를 많이 했다. 교회가 인적교류의 징검다리였다.

-엄청난 통일 비용, 동·서독 경제 규모 격차 등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제는 안정돼 있는 것 같다.

△벤트만=서독이 동독 지역 재건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을 뿐 아니라 동독 사람들도 경제 재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동독 사람들이 열심히 따라와줬다. 이로 인해 동독에서 경기부양이 잘 이뤄졌다. 엄청난 비용이 들긴 했지만 통일에서 얻은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슈뢰더=동독 지역에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현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동독 경제를 재건하니 동독에서 서독으로 오는 사람들이 줄었다. 그래서 균형적 발전도 이뤄졌다. 2019년이 되면 동독 지역에 대한 특별지원 프로그램이 다 끝난다. 동·서독 지역 모두 일반적 상황에서 다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이후 법적 제도적 정비에 어떤 노력들이 있었나.

△슈뢰더=동독이 통일 과정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한 조치가 인민의회 소집이다.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선거로 이뤄진 인민회의가 표결을 통해 서독 연방 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통일이 완성됐다. 동독이 서독 연방 공화국에 가입한다는 것은 서독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 시스템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법적 제도적 정비를 완성시키는 데 가장 큰 요인이었다.

-통일에 대비해 남한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될 가능성은.

△슈뢰더=가능하면 독일처럼 하루아침에 갑자기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들이 보기엔 행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갑자기 판문점이 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한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상상해보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겨난다. 따라서 북한이 스스로 개혁 프로세스로 통일에 점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에 개혁의지를 갖고 있는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개혁의지가 없다면 갑작스러운 통일도 배제할 수 없다.

△벤트만=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예상치 못한 것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라는 희망과 목표를 모든 국민들이 국가적 목표로써 마음에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좋은 의지를 갖고 헤쳐 나갈 수 있다.

한국인들은 통일에 대한 에너지를 갖고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것 같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한 만큼 통일이 오면 한국은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의지가 있으면 목표도 가깝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정리=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한·독통일자문위원회는

한·독 통일자문위원회는 독일 통일·통합 과정의 경험과 정보 등을 교환하기 위해 통일부와 독일 연방 내무부가 2010년 10월 체결한 통일업무 협력 양해각서(MOU)에 따라 만들어진 모임이다.

2011년부터 매년 한 차례 양국에서 번갈아 개최된다. 한·독 수교 130주년이 되는 올해는 3차 회의가 지난달 27∼29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통일부 주관으로 열렸다. 3차 회의에선 통일 과정에서의 민영화·사유화 등 재산권 문제에 대해 양측이 의견 교환을 나눴다. 우리 측은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등 11명의 자문위원과 전문가가 참석했다. 독일에선 요르크 벤트만 연방내무부 실장을 포함해 8명이 참석했다.

모규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