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권’을 아시나요] ‘송전선 소송’ 개인 권리와 권리 남용 사이…

입력 2013-06-29 04:02


최근 잇따라 제기되는 송전선 관련 소송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땅 위의 하늘도 사고파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전기를 공급한다는 ‘공익’에 토지 소유권과 같은 개인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법무법인 일신의 송지훈 변호사는 송전선 관련 소송에 대해 “재산권을 비롯한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송전선 소송이 개인의 권리남용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로 소송의 대상이 되는 154㎸, 345㎸ 송전선은 1970∼80년대 설치됐다. 전기가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송전탑·송전선 설치를 환영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토지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더라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송전선 관련 소송을 대리해온 송 변호사는 “잠재적인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게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란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수월하게 관련 공사를 진행해 왔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밀양 송전선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2007년 11월 승인받은 신고리 원전-북경남변전소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밀양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주민들은 “한전이 추진하는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며 “자연경관 훼손과 전자파 피해 등이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년간의 갈등 끝에 최근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키로 합의했지만 주민과 한전 사이 의견차가 워낙 팽팽해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전망이다. 송 변호사는 “전기는 꼭 필요한 공공재이지만 공익을 위해 멋대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단은 토지 상공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더 강조하는 추세다. 설령 토지의 지목이 당장 개발될 계획이 없는 임야나 잡종지라 하더라도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땅 주인들이 소유권을 행사함에 있어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고, 송전선의 가설로 인해 토지 상공에 대한 권리에 상응하는 임료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은 개인의 소유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인정하자는 것”이라며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묵살됐던 개인의 권리가 재판을 통해 구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측도 5∼6년 전부터 송전선 설치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계약을 맺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반면 송전선 소송을 두고 개인의 권리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정우 건국대 교수는 “송전선 때문에 10층 지을 건물을 5층밖에 못 지었다면 보상을 해주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임야나 논 같이 개발과 관련 없는 땅에도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비행기가 아무것도 없는 산이나 공터를 지나간다고 토지 소유자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비용의 증가로 전기값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정우형 명지전문대 교수는 “송전선을 설치할 때 한전과의 계약 자체를 거부하는 땅 소유자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결국 한전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선로를 우회해서 시설을 설치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한전 측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법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는 부작용도 있다. 송전선 아래에 땅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변호사에게 소개해 주고 알선료를 챙기는 식이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은 아파트 경비원 홍모(57)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홍씨는 2009년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 734명을 모아 김모 변호사에게 소개시켜 주고 대가로 1100만원을 받은 혐의다. 홍씨는 2011년에도 아파트 주민 971명을 모아 변호사에게 소개해 주고 4100만원을 받았다. 주민들을 소개받은 변호사들은 한전 등을 상대로 송전선 관련 소송을 진행했다.

정현수 문동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