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입맛 잡은 안동간고등어] 그 까다로운 현해탄도 건너… 간고등어, 살아있네∼

입력 2013-06-29 04:03


교통과 냉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염장(소금절임)한 안동간고등어가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간잽이’로 불리는 염장 기술자들의 적정 염도 조절 능력이다. 단순히 짠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어가 상하기 직전 발생하는 효소가 소금기와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낸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간고등어에 입맛이 길들여진 안동사람들은 식탁에 자반고등어가 없으면 아무래도 허전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노릇노릇 구워낸 안동간고등어 한 점….’ 생각만 해도 군침이 ‘꼴깍’ 목구멍을 넘어간다. 당장이라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간고등어는 ‘서민’자반이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넉넉한 살, 담백한 맛까지 더했으니 버거운 살림에는 참으로 고마운 생선이 아닐 수 없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간고등어는 더욱 반가운 먹을거리였다. 싱싱한 해산물을 구경하기 어려운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간고등어가 고급반찬의 지위를 가졌었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혼례, 상제, 생일, 회갑연 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안동간고등어(대표 김재문)가 생산하는 간고등어가 최근 식품 수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 진출했다. 도쿄, 나라, 오사카를 중심으로 현지 주요 매장을 통해 일본인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간고등어의 일본 수출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본산 생선 오염을 우려한 일본 소비자들의 한국산 고등어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수출상담 문의가 잇따랐다.

지난 3월 미국으로 3만 손을 수출한 데 이어 중국 룽징(龍井)의 안동간고등어 한·중 합작공장에서도 7월에 미국으로 대량수출이 이뤄질 전망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까지 안동간고등어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등어 두 마리를 묶은 것을 ‘한 손’이라 한다. 한 손은 그야말로 한손에 잡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다. 간고등어 한 손은 겉손과 속손으로 구분하는데 속손이 겉손보다 약간 작다. 겉손의 아가미에 속손이 쏙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바다도 아닌 내륙지방 안동의 특산물로 간고등어가 유명해진 이유와 탄생 배경은 흥미롭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안동에서 생선은 귀했다. 고등어 맛을 보려면 가장 가까운 영덕에서 사 와야 했다. 문제는 운송이었다. 영덕에서 안동까지는 80㎞. 요즘이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지만 과거엔 걸어서 꼬박 이틀이 걸렸다.

우마차를 이용해 이른 새벽 영덕을 출발하면 해질녘 청송군 진보면 신촌마을에 도착했다. 하루를 묵고 이튿날 다시 출발하면 곧 안동에서 반나절 거리인 임동면 챗거리장터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도착할 무렵이면 고등어 내장이 상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고등어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려 상하는 것을 막았다. 말 그대로 염장을 지르는 것이다.

썩는 것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금을 뿌린 고등어는 날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영덕서 챗거리장터까지 오는 동안 고등어는 적당하게 변하고 상하기 직전에 소금을 뿌린 뒤 안동까지 가다보면 간이 배면서 맛 좋은 간고등어가 됐다.

간고등어는 교통 여건이 안 좋았던 안동의 지리적 조건이 가져다준 세계적인 한국의 특산물, 자연의 선물이 됐다.

㈜안동간고등어는 1999년 설립됐다. 마침 그해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73세 생일상에 간고등어가 오르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등 푸른 생선이 몸에 좋다는 의학적 지식 확산과 진공포장법의 개발로 홈쇼핑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은 연 매출 200억원 이상의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안동간고등어는 제주도 근해에서 잡은 국내산 고등어를 원료로 사용한다. 그 중 육질이 가장 단단한 겨울철 고등어 사용을 고집한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미네랄 함량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전남 신안의 최상급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제품에 따라서는 죽염과 해양심층수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말할 나위 없이 고등어만큼은 까다롭게 골라 쓴다.

이제 안동간고등어는 예전처럼 짜지 않다. 자체 제품연구개발팀에서 건강과 맛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염도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어물전 간고등어보다 현저하게 염도를 낮춘 것은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한 것도 있겠지만 ‘안동간고등어 세계화’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올 여름 휴가철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잘 구워진 간고등어 한 토막으로 삶의 에너지를 보충해 보는 건 어떨까.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