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은 쌩쌩 웅덩이 곳곳… 멀고 험한 ‘자출족’의 길
입력 2013-06-28 17:57
경기도 고양시 일산은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섬’으로 불린다.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자전거 도로가 대부분 잘 닦여 있지만 유독 일산 지역만 자갈이 깔린 농로를 지나거나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산에서 서울 여의도 등으로 ‘자출’을 하려면 유격훈련이나 극기훈련을 받는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지난 21일 국민일보 기자가 직접 자전거를 타고 일산∼여의도 구간을 이동해봤다. 오전 6시10분쯤 일산 호수공원에서 출발해 백석역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20분을 달리자 백석역 인근 예탁결제원 삼거리에서 자전거 도로가 끊어졌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차도를 이용해야 했다. 700m 정도를 달려 섬말다리 사거리부터는 농로가 5㎞ 정도 이어졌다. 자갈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땅이 움푹 파인 곳도 많아 수차례 넘어질 뻔했다. 자전거 진동이 얼마나 거셌던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떨어져 액정이 박살났다. 게다가 새벽에 내린 비 때문에 곳곳에 물웅덩이도 있었다. 진흙이 심하게 쌓인 구간은 내려서 자전거를 끌어야 했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일산 자출족 모임 ‘일산 바이크 버스’ 운영자 김모(44)씨는 “낮에는 흙먼지가 일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잠시 후 30m 정도 이어지는 굴다리가 나왔다. 반대편에서 승용차가 나와 아슬아슬하게 기자 옆을 지나쳤다. 김씨는 “굴다리 주변에 조명이 없어 밤늦게 퇴근해 돌아올 때는 암흑천지”라고 했다.
농로를 피해 다른 길로 서울까지 이동하려면 섬말다리 사거리 부근에서 39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지난 23일에는 이 길로 자전거를 몰았다. 땅이 거칠지 않아 편하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지만 빠르게 옆을 지나는 자동차들 때문에 겁이 덜컥 났다.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자 자전거가 심하게 흔들렸다. 안되겠다 싶어 급히 브레이크를 잡아 자전거를 세우고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그러자 방해된다며 뒤에서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오전 6시40분쯤 신행주대교에 들어섰다. 자전거 도로가 없어 인도를 이용해야 했다. 폭이 2m가 채 안 되기 때문에 초보 자출족들은 사고가 날까봐 보행자 옆을 지나치기도 어렵다. 이후부터는 편한 한강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지만 이미 맥이 풀려 여러 차례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목적지인 여의도 CCMM빌딩에 도착하니 오전 7시45분이었다. 일산에서 여의도까지 약 26㎞를 이동하는 데 1시간35분이 걸렸다. 기자는 예전에 서울∼속초∼부산, 서울∼땅끝마을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던 자칭 ‘자전거 마니아’임에도 일산길은 쉽지 않았다.
김씨는 “일산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자전거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자전거 도로는 너무 먼 길로 돌아가도록 돼 있어 보통 농로나 일반도로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고양시 주민이 보유한 자전거는 지난해 기준 19만5000대에 이르는데도 자전거 도로가 부실한 건 예산 때문이다. 김영범 고양시청 자전거도로팀장은 “지자체 예산으로는 일산과 서울을 잇는 광역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며 “2007년에도 호수공원에서 한강까지 ‘그린웨이 자전거 도로’를 만들려다 예산 때문에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이용상 문동성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