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 발발 63주년… ‘철의 삼각지’ 가보니
입력 2013-06-28 17:52
6·25 전쟁 당시 김화·평강과 함께 ‘철의 삼각지’로 불렸던 강원도 철원. 치열한 고지전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곳은 드넓은 평야가 전쟁의 상흔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구국(救國)의 사단’으로 불리는 6사단이 지키는 GOP 철책에 다가가자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이 지난 26일 찾은 천왕봉 OP 초소에는 날카로운 눈빛의 병사가 북측을 감시하고 있다. 해발 492m에 위치한 천왕봉 OP 감시초소 정면에는 육안으로도 북한군의 초소가 보였다. 쌍안경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자, 조그만 봉우리 정상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북한군 병사와 마주쳤다. 불과 1.2㎞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초소 왼편으로 보이는 ‘백마고지’는 1952년부터 10일간 주인이 24차례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포탄이 많이 떨어져 땅이 하얗게 변한 탓에 ‘백마가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비가 내리면 4만5000명 사망자 핏물이 내려왔다는 ‘피의 능선’도 손에 잡힐 듯했다.
철책을 따라 걷다 보니 녹슨 철조망과 이음작업을 새로 한 새 철조망은 포성이 멎은 60년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이음작업을 한 철책은 다홍색과 회색빛으로 엮여 있었다.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청송부대 전차대대에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시 상황에 대비해 훈련이 한창이었다. M48계열 전차 8대가 이곳에서 가열찬 시동음을 내며 움직였다. 40년이 넘은 노후화된 장비임에도, 장병들은 전차에 올라타 비장한 표정으로 훈련에 나섰다.
지금은 관광지로 잘 알려진 ‘제2땅굴’ 역시 정전 60년의 아픔을 안고 있었다. 1975년 경계근무 중이던 한 초병이 지하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철원군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땅굴을 발견했다. 당시 땅굴 시추작업 중 군인 8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입구 앞에는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도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는 더운 여름철, 잠시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온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초소를 본뜬 모형 앞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던 20대 연인 뒤로 한 노인이 흐느끼고 있었다. 일본에서 왔다는 나카야마(76)씨는 “88년 이후 25년 만에 한국을 찾았는데 아직도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슬프다”며 흐느껴 울었다. 외국인에게 철원은 한민족이 분단된 현실을 보여주는 슬픔의 땅이지만, 정작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관광지’로 보였던 것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