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석곡교회] 우리 기도는 하나야… 올 가을에도 ‘복음 풍년’

입력 2013-06-28 17:45 수정 2013-06-28 19:19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석곡교회

석곡교회는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석곡리에 있다. 화암면 일대는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장관을 이루는 관광지다. 화암약수와 화암동굴, 몰운대를 비롯한 화암팔경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 휴가철 주말에는 차를 댈 공간도 부족할 정도다.

반면 교회가 있는 석곡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특히 교회 뒤편 산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수리골, 피목, 마덕 등의 자연부락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주민 대부분은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는다. 벼농사를 하거나 옥수수, 감자, 고추 등을 재배한다.

잠시 일손을 놓고 기도하는 안식처

교회의 주된 전도 지역인 억실 마을은 해발 400여m가 넘는다. 이 마을엔 석곡리 전체 80여 가구 가운데 30가구 정도가 산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모내기는 벌써 끝났고 이제 김매고 약 치느라 바쁜 때”라고 말했다. 화암면사무소를 통해 공공근로를 하면서 일당 3만여원을 받고 꽃을 심거나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치우는 주민들도 있다.

석곡리에는 거의 60대 이상 주민들만 남았다. 지난해 3월 태어난 김 전도사의 아들 한결이 덕분에 주민들은 오랜만에 아기울음 소리를 듣게 됐다. 억실에서 9㎞쯤 떨어진 북동리에선 지난 3월 14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한동안 화젯거리가 됐다.

크리스천은 드물다. 70대 이상 성도 10여명과 중·고교생 8명이 예배를 드린다. 몇 명 안 되는 어린이들은 중학생 때까지 교회에 잘 나오다가 고교 진학 후엔 주일예배에 매번 나오지 못한다. 마을 가까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있고 고등학교는 정선읍내에 있기 때문이다. 고교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서 자주 집에 오지 못한다.

주민들은 주로 절에 다니거나 무속신앙을 숭배한다. 그렇다고 기독교인을 따돌리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김용관(30) 담임전도사는 “주말에 관광지를 찾아왔다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간간이 우리 교회에 들르는 분들도 있지만 대체로 조용하고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전형적인 시골교회”라고 설명했다.

고령의 주민들에게 교회는 주 안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안식처인 듯했다. 지난 24일 만난 성도들은 “성경말씀을 잘 알지는 못해도 맘이 편안해지니까 교회에 나오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교회는 주일 하루 일손을 놓고 예배를 드린 뒤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웃과 허물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도 했다. 한 성도는 “일이 바쁘니까 평일에는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지만 주일은 빼먹지 않는다”며 “하나님께서 주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그 핑계로 하루 쉬는 거 아니겠느냐”면서 웃었다.

전제옥(74·여) 권사는 “놀면서 지내더라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양식을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으니까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외진 시골에도 꼭 교회가 있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멀리 가기도 힘든데 이렇게 가까운 데 교회라도 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편안하게 쉴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최동근(73) 집사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라 이 마을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이런 소중한 마을에 교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30세쯤부터 자주 숨이 차고 마른기침을 했던 박순자(71·여) 권사는 하나님께서 붙들어줘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 교회에 두 번째로 오신 목사님이 내가 아픈 걸 고쳐줬어요. 저를 위해서 약을 먼 데서 어렵게 구해오시고 기도도 얼마나 열심히 해주셨는데….”

정순자(84·여) 권사는 잠시 하나님을 멀리했다가 다시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며 얘기를 꺼냈다. 중간에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 조금 섭섭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자녀 5형제 중 4명이 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현재 셋째 아들이 정 권사를 모시고 산다. 정 권사는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았는데 아들들을 다 불러 가셔서 한동안 속상했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좋은 거도 없고 안 좋은 거도 없고 내가 갈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하나님께 잘 보여야 될 것 아니냐”면서 웃었다.

어르신들에겐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 속 평안함뿐 아니라 ‘탤런트 전도사’의 설교를 듣는 즐거움도 컸다. 훤칠한 키에 다정다감한 젊은 목회자 덕분에 교회에 나온다는 할머니 성도들이 많았다. 신재순(83·여) 권사는 “우리 전도사님이 이 마을에서 제일 젊고 잘생긴 분”이라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할머니 성도는 “테레비(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마냥 잘 생긴 전도사님이지만 우리 손주가 더 이쁘다”면서 웃었다. 전금자(75·여) 권사는 “젊은 전도사님이 만날 노인네들을 차로 데리러 오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산골교회의 멀티미디어 설교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소속된 석곡교회는 1975년 9월 창립됐다. 정선읍내 정선감리교회의 지교회로 세워졌다. 정선감리교회에 다니던 한 장로가 자신의 땅을 내놔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교회가 건축되기 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멍석을 깔고 예배를 드렸었다.

교회 내부는 5년 전쯤 리모델링됐지만 빨갛게 녹슨 십자가탑 등 외형은 초창기 모습 거의 그대로다. 60㎡(약 18평) 면적의 예배당에 의자는 21개뿐이다. 10여 년 전쯤 성도 20여명이 예배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부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느 농어촌 마을처럼 젊은 주민들이 죄다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성도 수는 줄어들었다. 2011년 1월 김 전도사가 부임했을 때 주일예배에 참여한 성도는 8명뿐이었다. 그 이후 성도 수는 4명 정도 늘어났다. 김 전도사는 “성도 수가 늘었다가도 갑자기 아프셔서 못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계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자란 김 전도사는 ‘∼했더래요’라고 끝나는 사투리가 꽤 낯설었고 말이 빠른 주민과는 대화를 하기도 어려웠지만 차츰 적응했다. 주민 대부분은 ‘전도사님’이라 부르며 그를 챙겨주었다. 간혹 ‘젊은 사람’이라며 반말을 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김 전도사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사역을 해보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며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주신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했다.

농번기에 그는 음료수를 들고 논밭을 찾아다녔고 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데 공을 들였다. 성도들과 함께 김 전도사는 교회 옆에 옥수수, 고추, 토마토, 가지, 상추, 호박 등을 키우는 텃밭도 가꿨다. 그는 “무엇보다 완전히 이곳 주민과 동화돼서 소통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 가운데서 복음의 열매도 많이 맺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는 마을 어르신 모두를 초청해 식사 대접도 자주 하고 싶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특히 겨울엔 난방비를 내기도 버겁다고 했다.

설교도 쉽지 않았다. 귀가 어둡거나 성경에 나오는 용어를 낯설어하는 어르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김 전도사는 ‘멀티미디어 설교’를 도입했다. 지난 5월 어버이주간 예배 땐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 육상 400m 준결승에 출전했다가 오른쪽 허벅지 부상을 당한 선수의 경기 장면을 성도들에게 보여줬다. 이 선수는 트랙에 주저앉았지만 관중석에서 뛰어나온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완주했다. 어르신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영상에 집중했다고 한다. 최옥화 (70·여) 권사는 “전도사님이 좋은 거도 많이 보여주시고 찬찬히 말씀을 잘 해주시니까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했다.

김 전도사는 협성신학대를 나와 협성신학대학원을 2011년 2월 졸업했다. 충남 당진 원당중앙교회, 서울 자양동 성수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다 첫 부임지인 이 교회에 파송됐다. 담임목회를 시작하고 3개월 뒤 한수지(29) 사모와 결혼했다.

석곡교회 표어는 ‘주님의 사랑, 행복한 사람들’이다. 김 전도사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제 자신도 하나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목회자가 되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초기교회의 간절한 신앙은 잊혀지고 세속화돼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행여 도시뿐 아니라 시골까지 물질주의에 완전히 물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사도행전 3장 6∼7절 말씀을 암송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정선=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 석곡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쯤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갈JC까지 가서 영동고속도로 원주 방면으로 들어간다. 만종JC에서 중앙고속도로 대구 방면으로 갈아타 제천IC까지 간다. 제천IC에서 영월·제천 방면으로 나온 뒤 신당삼거리에서 의림지 방면으로 좌회전, 용두대로를 타고 가다 용두교사거리에서 의림지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장락삼거리에서 영월·주천 방면으로 좌회전, 38번 국도를 타고가다 문곡교차로에서 정선 방면으로 진입한다. 남면사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덕우삼거리에서 하장·화암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424번 지방도로를 타고 4.7㎞를 가다가 우회전하면 교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