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오동나무 잎의 배려

입력 2013-06-28 17:27

“백 선생, 여기서 위를 보며 기다려요.” 은사님께서 나오시길 기다리며 말씀대로 하늘을 쳐다봅니다. 둥글고 커다란 이파리들이 무성한 사이로 한낮의 햇빛이 간간이 새어 나옵니다. 둘러보니 커다란 나무들이 많더군요. 오동나무라고 하시네요. “오동나무 잎은 제일 늦게 나온단다. 키가 큰 나무라 저리 넓은 이파리가 일찌감치 나오면 저보다 키 작은 나무들은 햇빛을 받을 수 없으니까. 아래 나무들의 잎이 다 나온 뒤에, 그 다음에 제일 늦게 나오지. 그렇지만 한 번 나오면 쑥쑥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몰라. 순식간에 저렇게 커지지.”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인가 봅니다. 남보다 크고 빨리 자라는 오동나무 잎이라서 늦게까지 기다리는 것. 함께 자라기 위함이겠죠? 그건 ‘사랑’이고 ‘배려’라고, 그래서 오동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릴 때마다 “사랑 바람이 부는구나!” 은사님은 그리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무 이파리들조차 저보다 작고 약하고 느린 이웃을 배려하고 사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우리들은 정작 그러하지 못하니까요. 남보다 더 크고 더 높이, 더 빨리 자라는 것을 능력이요 재능이라 뽐내며 탁월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우리는 우리의 성마르고 조급한 날갯짓에 다치거나 눌릴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사는 날들이 많잖아요.

그곳에서 하늘을 쳐다보길 참 잘했습니다. 뒤돌아볼 여유 없이 각박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제자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 싶으셨는지 깨달았으니까요. 선생님, 이웃에게 ‘사랑 바람’을 일으키며 사는 그런 제자가 되겠습니다. 함께 자라나기 위해 기다리는 법도 배우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더불어 사는 삶을 지어나가겠습니다. 세상의 법칙과 달리 살다 지칠 땐 또 하늘을 쳐다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