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이 시대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

입력 2013-06-28 17:28


유럽에서 연구와 사역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귀국하는 동료로부터 다미아노 십자가를 선물로 받았다. 오랫동안 아씨시의 성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었기에 ‘성다미아노십자가’라고 불리는 이 십자가는 타우 십자가와 더불어 프란시스수도회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필자가 선물로 받은 십자가는 12세기에 시리아의 수도자에 의하여 그려진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다. 이 이콘은 요한복음에 기초를 둔 요한계 이콘이며 어두움을 극복한 빛과 사랑의 승리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 프란시스는 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가서 허물어져가는 내 집을 고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가 속했던 세계를 떠나 가난한 수도자의 길을 갔다. 그 길은 고난과 가난의 도정이었으나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가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아씨시의 프란시스야말로 역사상에 존재했던 유일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로 그의 삶이 지닌 독보적인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허물어져가는 집을 재건하기 위한 길에 나서기 전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여/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소서/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이 기도는 성 프란시스의 첫 번째 기도이며 당대의 민중들이 사용하던 이탈리아 대중어로 된 기도이다. 작성연도는 1206년 초이며 회개의 시점에서 드린 기도로 이해되며 그의 전 생애를 특징짓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여”라는 고백으로 시작되며 전적인 의존, 경외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위대함 앞에 인간이 절망과 어둠 속에 머물고 있음을, 그리고 신앙과 희망 사랑만을 청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프란시스는 호칭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주의 뜻을 실행하겠다는 제안으로 기도의 끝을 맺었으며 그의 마음과 눈은 십자가 고통 너머의 빛과 영광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필자가 프란시스의 십자가에 얽힌 사연을 나누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게 프란시스의 청빈과 가난의 영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에 부름 받은 목회자들은 십자가로부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허물어져가는 주님의 집을 고치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세우고자 하는 집이 영원히 허물어 내릴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뛰어든 주님의 집을 세우기 위한 사역에 참여하면서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의 영광이 무엇이며 목회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권력을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자는 것인가, 아니면 무슨 대단한 명예를 탐하는 길에 들어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필자가 내린 결론은 목회자의 영광은 그 목회자의 목회현장에 주님께서 2000년 전에 행하셨던 복음역사의 능력이 반복되어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한 눈물과 헌신이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과 함께 미래로 향하는 영원한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목회자의 거듭남 없이 교회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고 복음의 능력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생각 있는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회개와 변화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회개와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매일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로부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들이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그날의 프란시스처럼 십자가로부터 들려오는 “가서 허물어져가는 내 집을 고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여/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소서/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회장, 꿈동산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