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 헤매는 만델라… 낯뜨거운 취재경쟁
입력 2013-06-27 19:10 수정 2013-06-28 00:32
폐 감염증으로 입원한 넬슨 만델라(95)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에 대한 취재 열기는 1990년대 초반 그가 수감생활을 마치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만큼이나 뜨겁다. 만델라가 입원한 프리토리아의 메디클리닉 심장병원 앞은 취재진 텐트와 자동차,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기자들은 처음 보는 방문객이 병원에 들어서면 누군지 확인하고 만델라 가족이나 병세와 관련된 취재원이다 싶으면 가차 없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AP통신 사진기자는 아예 병원 정문이 보이는 한 아파트 발코니를 빌려 병원을 내려다본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현지시간) 세계가 만델라의 쾌유를 기원하는 사이 지나친 취재 열기가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적 지도자 만델라의 부고를 기다리는 외국 기자들이 남아공 사람들의 눈에는 결례로 보이는 것이다.
승용차를 탄 남아공 시민들이 취재진을 지나치며 집으로 가라고 소리 지르거나 트위터에 ‘기자들은 독수리’라고 비난했다고 NYT는 전했다. 만델라의 장녀 마카지웨(60)는 27일 국영 방송 SABC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 먹는 것 같다면서 “외국 취재진은 사자가 물소를 집어삼켜 남은 시체를 먹길 기다리는 독수리 같다”고 비난했다.
외국 취재진과 만델라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맥 마하라지(78)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그는 최근 기자들이 환자 비밀을 지켜야 할 의료진과 접촉해 만델라에 관한 건강 정보를 얻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마하라지를 보는 기자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그가 만델라의 병세와 관련된 정보를 독점하는 데다 한때 뇌물, 성폭행 스캔들에 휘둘렸던 제이콥 주마 대통령의 현 대변인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 대변인이 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메시지를 전한 만델라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마하라지는 1970년대 절친한 친구인 만델라와 함께 남아공 로벤섬 교도소에 투옥됐으며 만델라 자서전 ‘자유를 향한 여정’의 기초 자료를 밀반출한 인물이다. 남아공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의 역경 스토리를 세계에 알린 마하라지는 지금 만델라의 인생 마지막 챕터를 정리하는 중이다. 그러나 만델라를 향한 마하라지의 우정이 여전히 순수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가했다는 것은 과거와 다른 점이다.
만델라를 과보호하려는 이들이 오히려 매스컴의 이득을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델라의 손녀 2명은 TV 쇼 프로그램 ‘만델라 되기’를 진행해 명성을 얻고, 일부 정치인은 만델라가 투병하는 사이 정치적 유산과 이미지를 물려받기 위해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