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전쟁 상처 애써 외면했다… 獨 작가 제발트 ‘공중전과 문학’

입력 2013-06-27 17:39 수정 2013-06-27 17:40


독일작가 W. G. 제발트(1944∼2001·사진)는 1997년 스위스 취리히대학 초청을 받아 ‘공중전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미 전세가 기운 제2차 세계대전 말 영국군 공습으로 희생된 독일인 민간인 60만명에 대해 독일과 독일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내용이었기에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강연에서 인용한 자료와 논문에 자신의 산문과 사진 자료를 추가해 2년 뒤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한다. 이 책은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제발트의 논점은 특히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 국민에 대해 애도하지 못했던 독일 전후문학의 경향에 맞춰져 있다.

“이제 막 전역한 작가들로 구성된 신세대는 감상과 비애로 빈번히 빠져버리는 전쟁 경험 보고에 몰두하느라 도처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참상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고, 그런 면에서 신세대도 구세대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21쪽)

전후 독일이 처한 물질적이며 도덕적인 파멸의 실상은 어느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에서 서술이 금기시됐다는 것이다. 2차 대전 가해국이라는 오명 아래 독일 전역에 남은 파괴의 참상을 거론하는 것은 일종의 터부에 묶였고 독일 국민 개개인마저도 스스로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치욕스런 가정사의 비밀을 안게 됐다는 것.

그는 패전 이후 은폐된 폐허의 심층에 천착했던 작가로 1940년대 말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를 쓴 하인리히 뵐을 비롯해 헤르만 카자크, 한스 에리히 노사크, 아르노 슈미트 같은 소수를 꼽을 뿐이다. 그나마 ‘천사는 침묵했다’는 가망 없는 우울로 각인됐다는 이유로 1992년에야 출판됐다.

제발트는 전쟁을 국가 차원이 아닌 파괴의 자연사적 특징과 재앙의 측면에서 부각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독일 전후문학이 나치스 시대에 와해된 독일 문학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을 공습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거나, 얼마간 다루었다 해도 매우 미흡한 방식으로 다루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발트에게 문학은 객관적인 역사 기술(記述)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또 다른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이 같은 논지는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폐허문학이란 게 존재했는지, 시의성 있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경진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