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빠진 어머니 삶도 가벼울까… 김명인 열 번째 시집 ‘여행자 나무’
입력 2013-06-27 17:40
올해 등단 40년을 맞은 시인 김명인(67·사진)이 열 번째 시집 ‘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첫 시집 ‘동두천’(1979)에서 한국전쟁 발발에 따른 무의식 속 전쟁의 기억과 가족과의 단절을 몸에 새긴 채 “우리가 함께 맨살인데 몸 섞지 않고서야 그 무슨/ 우연으로 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베트남 1’)라며 세속의 사랑에 깃든 삶의 우연성을 노래했던 그가 40년 긴 여정을 관통해 행장을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 행장에 들어있던 세목들은 자꾸만 ‘구름처럼’ 허공으로 떠오르려 한다.
“몇 달 만에 요양병원으로 면회 가서/ 구름처럼 가벼워진 어머닐 안아서 차로 옮기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살 죄다 어디로 갔을까?/ (중략)/ 제 살의 고향도 허공이라며/ 어제 못 보던 구름 내게 누구냐고 자꾸 묻는다/ 난 아직 날개 못 단 새끼라고/ 말씀드리면 머지않아 내 살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푸른 하늘에 섞이는 걸까?”(‘살’ 부분)
우리가 흔히 ‘살이 내렸다’고 말하지만 대체 살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살이라고 했지만 그걸 ‘존재’라는 단어로 바꿔 읽어본다. “그 살 죄다 어디로 갔을까”를 “그 존재 죄다 어디로 갔을까”로. 답은 특정한 형상이 없는 ‘구름처럼’이다. 살아있음 혹은 존재 자체가 애초에 ‘구름처럼’ 형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시 ‘살’에서 중심적인 어휘는 어떤 지향을 나타내는 ‘어디로’라는 부사어이다. ‘우리는 어디서 만나 어디로 가는 것일까’의 그 ‘어디로’는 이번 시집의 테마이기도 하다.
“대양의 한가운데 떠도는 어떤 섬은/ 쓰레기들이 뭉쳐서 번성한다, 다 쓰인 뒤에도/ 서로의 형해로 남는 허전한 구각들/ 얼마만큼 감춰지고 지워지다/ 문득 소스라쳐 깨어나는 통점들/ 손잡이만 가득 달린 빈 서랍장 밀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또 어디로?”(‘어디로?’ 부분)
‘삶의 우연성’을 노래했던 첫 시집과 이번 시집의 연원을 맺어본다면, 이번 시집은 그 우연성마저 지워진 채 ‘이제 또 어디로’라는 다른 차원으로의 지향 내지 변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지향과 변형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시인이 30여년이나 살아왔던 집에도 적용된다. “어느새 하루가 잦아드는 창밖 물끄러미 내다보면/ 파묻힐 듯 사무치는 석양 끌고/ 새들 날아간다, 저기/ 집이란 저렇게 가벼워야 공중부양도 하는 것을!”(‘공중부양’ 부분) 이번 시집은 이렇듯 점점 가벼워지는 몸에서 찾는 무한한 자유의 노래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