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게르니카
입력 2013-06-27 18:40
그림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술관 벽에 전시된 그림 앞에 서서 작품 배경부터 작가의 의도까지 구구절절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 하염없이 벽을 보고 서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 피카소의 그림이 그렇다. 난해하고 기괴한 그의 그림들은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불편함 그 자체.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딱히 마음 둘 곳이 없어 돌아서게 된다. 딱 한 작품만 빼고.
‘게르니카’, 1937년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이 벽화는 그의 작품 중 가장 괴롭고 아픈 그림이다. 같은 해 4월 26일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독일 나치의 콘도르 비행단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폭격은 네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20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대부분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이었다. 민간인들을 향한 최초의 무차별 폭격.
분노한 피카소는 곧 높이 3.5m, 폭 7.8m의 대작을 완성했다. 죽은 아이들과 불타는 건물, 흩어진 시신과 동물의 머리. 그는 피를 의미하는 붉은색을 쓰지 않았다. 그날의 하늘을 뒤덮은 전투기도, 쏟아져 내리는 폭탄도 없다. 커다란 화폭에 아이가 마음대로 올려놓은 직소퍼즐을 보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길 따라 구석구석 전쟁의 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림에서 ‘전쟁 반대와 평화’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읽힌다. 왜일까.
NHK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피카소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가 ‘게르니카’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딱 하나였다. 미래의 평화.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무고한 이의 생명과 일상을 파괴하는 전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허망한 죽음을 당했는지, 그 처참했던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아픔을 직시하고 그 자리에서 미래의 평화를 생각하게 하는 것. 분노에 질척이며 감상에 빠져 세월을 낭비하지 말자는 냉철한 이성의 표현이었다.
해방 이후 서로의 이념을 탓하며 좌우로 갈라서서 시작한 싸움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참혹한 결말을 낳았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그렇게 60년을 가슴 졸여왔건만 남북은 여전히 대치 중이고, 나라 안은 좌우로 갈라져 온통 난리다. 나라를 위해 이 오래된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 이보다 중하고 급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구든 먼저 시작하려는 의지라도 보여주면 좋겠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평화의 시작이 아닐까.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