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랑에 울지마라… 어차피, 어긋난 ‘거래’인 것을
입력 2013-06-27 17:39
사랑은 왜 아픈가/에바 일루즈/돌베개
‘사랑은 왜 아픈가’. 연분홍 표지, 에세이 같은 가벼운 제목에 끌려 덥석 집어 들었다간 낭패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사회학이라는 부제가 정확히 책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대중적 학술서라는 얘기다.
문화비평서 ‘감정 자본주의’의 저자인 이스라엘 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이번에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으로 치부되는 사랑을 사회학이라는 창으로 들여다봤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편에 서서 썼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랑받지 못하거나 버림을 받았거나 거리를 두는 그 남자의 태도로 아파하는 여성의 낭만적 고통이 결정적으로 현대의 주요 제도와 가치가 빚어놓은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분석한 시도를 낭만적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입하려 했다”는 저자의 야심 찬 시도는 첫 장에서부터 통찰의 예리함을 엿보게 하며 기대를 갖게 한다.
바로 사랑은 ‘느끼다’는 감정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고르다’는 선택의 영역이라고 보는 대목에서다. 선택.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대성을 보여주는 행위이며, 사랑으로 인한 우리의 혼란스러움과 아픔의 출발이라고 본다. 영국 여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 등의 여러 소설에서 묘사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만 해도 사랑의 선택 방정식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신분사회에서 결혼은 가문끼리 혹은 특정집단끼리의 짝짓기 문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들어서 이런 과거의 규범과 기준이 무너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상대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사랑은 개인적인 것, 주관적인 것이 되는 등 사랑의 방정식에 일대 전환이 이뤄지면서 거대한 결혼시장이 형성됐다. 이 시장에서는 전통사회에서처럼 ‘도덕’이나 ‘재산’이 아니라 ‘성적 매력’이 갈수록 중요한 가치가 돼 버렸다. 상대를 고르는 잣대에서 과거의 공동체적 규범이 영향력을 잃은 자리를 미디어가 꿰차면서 결혼시장에서 섹시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누구든 ‘자유롭게’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결혼시장에서 상대를 선택한다는 신화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저자가 비판하는 지점은 바로 그 자유숭배이다. “경제의 영역에서 자유방임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은 주범으로 비판받았다면, 똑같은 논리로 사랑의 영역에서의 자유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젊은층의 사랑과 성 풍속도를 그린 인기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여성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와 그의 상대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의 대화를 보자.
“어째서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거야?”(캐리)
“두려워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우리가 결혼하겠구나 하고 생각할까봐 두려워.”(미스터 빅)
저자는 이 드라마 속 장면을 사랑의 자유 뒤에 감춰진 불평등의 예로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결혼과 섹스의 영역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큰 폭의 자유를 누리고 결과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감정의 영역에서 지배하는 걸 가능하게 하는 교묘한 사회적 조건을 파헤친다. 섹스만 해도 그렇다. 흔히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식’의 해석은 남자는 섹스에 더 강하게 끌리는 반면, 여자는 친근함과 사랑과 관심에 더 가치를 두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이 다르다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남녀의 차이는 여성이 임신할 경우 단 한 명의 남자에게 사회경제적 지위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정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다. 이는 남자에게 ‘감정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만의 문화지층도 해부의 대상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미디어는 사랑의 욕구 불만을 더욱 부추긴다. 바로 미디어를 통한 상상력의 제도화인데, 예컨대 현대판 신데렐라 식 드라마는 성을 상품화시킬 뿐 아니라 상상력을 과도하게 부추겨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갈망하게 만든다. 결혼 이후 이내 심드렁해지는 권태도 현대사회 문화모델의 결과로 포착된다. 실망감 역시 현대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으로의 인생 전체가 확정된, 오로지 틈새만 잘 메우면 되는 근대의 인간은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체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비해 실망할 확률이 낮다면서 근대와 현대를 비교한다. 결국 저자는 사랑은 물론 권태조차도 사적 경험이나 호르몬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프로이트 심리학이나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식 생물학적 결정론에 강펀치를 날리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사랑의 고통을 낳는 제도적 원인을 묻고 있는 저자의 책은 어떤 효용을 가질까. 저자는 “조금이라도 사랑의 아픔을 줄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 책이 실연의 아픔에 ‘심장이 믹서에 갈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여성에게 사랑의 고통에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당장은 힘들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김희상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