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 없다…” 영화인 심재명의 절절한 사모곡
입력 2013-06-27 17:49
엄마 에필로그/심재명/마음산책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 개론’…. 한국 영화사에 새 이정표를 세운 영화들이다. 모두 명필름의 심재명(50) 대표가 제작했다. 그 심 대표가 쓴 에세이라고 했을 때 좀 심드렁했다. 성공한 여성들의 후일담이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 얘기다. 그것도 이제 오십이 된 여성이, 엄마가 그 나이였을 때를 떠올리면서 쓴 글이어서 사람을 확 끌어당긴다. 어느 새벽, 갱년기 탓에 온몸이 땀에 젖어 일어나 ‘옥수수 쉰내 나는’ 옷을 입은 채 앉은 오십의 여성이 엄마의 오십을 떠올리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질풍노도 시절의 딸을 감내해야 했던 엄마 역시 갱년기의 고통을 통과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웃으며 그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엄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엄마는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미화되지 않는다. 한시도 몸을 놀리지 않던 부지런한 엄마는 아끼는 게 습관이 돼 양념은 늘 조금만 치는 궁상을 보였다. 버스 차비를 더 냈다고 딸의 뺨을 때리던 부당하게 감정적인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정직함이 글의 힘이다. 가족애가 더 심금을 울린다. 유방암, 담석증으로 고생했던 엄마를 끝내 앗아간 루게릭 병. 그 병은 장성해 독립했던 형제들이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돼 준다. 엄마의 그 시절은 저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책은 자연스레 엄마의 삶에서 시작해 딸의 삶으로 끝난다. 그래서 엄마 에필로그는 딸의 프롤로그에 다름 아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