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위해 고안된 안락의자… 어쩌다 게으름의 상징이 되었나
입력 2013-06-27 17:50
사물의 역습/에드워드 테너/오늘의책
운동화의 역사는 길지 않다. 특히 육상경기에 특화된 신발은 철도가 대중화돼 사람들 관심이 장거리 도보에서 스피드를 겨루는 달리기 경주로 넘어간 1870년대에나 등장했다. 300년이 되지 않는 운동화 출현의 역사는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 달리기가 포함됐던 그 장구한 역사를 감안하면 의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맨발에 적합하도록 트랙에 값비싼 고운 모래를 덮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전한 스니커 운동화는 195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생활과 복장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는 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일상에서 가죽 구두의 지위를 밀어냈다. 스포츠 과학은 운동화야말로 건강이라는 등식의 믿음을 조장한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런 신화를 여지없이 벗겨낸다. 전통적으로 신발을 신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오히려 충격과 관련된 부상 비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사람들은 발바닥이 외부에 노출되면 금방 상처를 입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이 이렇게 민감해진 것은 애초에 신발을 신어서다. 또 맨발로 일주일 정도만 다니면 발에 두꺼운 보호막이 생겨 생활에 아무 불편함이 없다. 지금도 멕시코 세리족 등 10억명이 맨발로 생활한다.
‘사물의 역습’은 운동화를 비롯해 안락의자, 젖병, 건반, 안경, 헬멧 등 몸과 관련된 9가지 물건의 역사와 그것이 숨긴 역설을 보여준다. 이들 일상의 물건은 신체를 보호하고, 자세를 잡아주며, 우리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했지만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안락의자가 대표적이다. 안락의자 이미지는 1950년대 초에 완성된다. 백인 남성 임원이 퇴근 후 셔츠를 입은 채 안락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원래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 취지에서 벗어나 게으름과 비만의 상징이 됐다.
일부 혁신은 발명보다 사용법에 있었다는 점을 논증하기도 한다. 문자 자판은 효율적인 필기를 가능하게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몸의 일부처럼 친숙한 자판이 되기까지 그 단조로운 일을 담당했던 타이피스트들이 발명가 이상으로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시대적 가치관이 물건의 성장과 발전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18세기 모유수유의 권장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1841년 미국에서 ‘락틸’이라는 여성의 가슴 모양 젖병에서 시작한 현대적 형태의 젖병은 20세기 초반 과학적 모성,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의 상징으로 권장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기 지능과 면역체계에 끼치는 모유의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젖병의 신세는 다시 추락한다.
이처럼 신발, 안경, 의자 등 우리 몸을 변화시킨 다양한 발명품 속 이야기를 파고드는 문장 톤은 사뭇 유쾌하다.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의 명강사라는 저자의 관록이 느껴진다. 장희재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