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민권운동의 꽃 ‘투표권법’ 美 대법원 “일부조항 위헌” 결정
입력 2013-06-26 19:35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일부 남부 주에서는 흑인의 투표를 막기 위한 ‘악랄한’ 법규나 관행이 적지 않았다.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액의 세금을 내도록 해 가난한 흑인들의 투표 참여를 막는 투표세(polling tax), 문맹이 많은 흑인들을 배제하기 위한 문자해독 능력시험 등이 대표적이었다.
65년 의회를 통과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은 ‘흑인 민권운동의 꽃’으로 불렸다.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이 법에 서명할 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옆에서 지켜봤다.
이 법의 핵심은 제5조인데, 일부 주나 자치단체의 경우 선거 관련 규정과 절차를 변경할 때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제4조는 어떤 주나 자치단체가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를 적시했다.
미국 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이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서 흑인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투표권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앨라배마주 셸비 카운티에서 제기한 투표권법 위헌 소송에서 선거법을 개정할 때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 정부의 선정 기준을 정한 4조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선거법 개정 시 연방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주를 정한 5조는 합헌 판결을 내렸으나 이와 직접 연관된 4조를 위헌이라고 결정함에 따라 5조의 효력도 사실상 상실했다.
이 법의 적용대상은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애리조나, 알래스카, 버지니아 등 주로 남부지역 주들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보수성향 5명이 찬성, 진보성향 4명이 반대 의견을 밝혀 대법관의 이념적 성향이 그대로 반영됐다.
대법원은 현행법 조항이 50여년 전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의회가 현실에 맞춰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시민단체들은 주 정부가 소수인종을 차별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할 여지가 커졌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일부 주 정부가 선거에 임박해서 법을 바꿔 소수인종 투표를 막는 사례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판결에 매우 실망했다”며 “모든 미국민이 동등한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의회에 관련 법안 처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원의 과반수를 공화당이 차지한 상황에서 초당파적으로 새 법안이 통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텍사스 주 검찰총장은 대법원 판결 직후 그동안 보류됐던 투표자의 신원 확인을 강화하는 법률을 곧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