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저금리 시대’… 각국 채권금리 줄줄이 뛴다

입력 2013-06-26 17:41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 후폭풍에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실종됐다.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까지 전 세계 주요국의 채권금리가 줄줄이 급등(채권값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라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계·기업의 부담이 가중돼 경기회복 속도는 더욱 느려질 전망이다.

◇저금리 시대의 종말=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부터 일제히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25일 기준 미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1일에 비해 0.977% 포인트 오르며 연 2.6%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영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881% 포인트, 독일은 0.6376% 포인트 올랐다. 경기회복을 판단한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천명한 지난달 말부터 채권금리 상승은 더욱 뚜렷해졌다.

우리나라 국고채들도 지난달부터 1% 포인트 가까이 금리가 치솟는 모습이다. 25일 현재 10년 만기 국고채의 금리는 지난달 2일보다 0.85% 포인트 오른 연 3.5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84% 포인트, 3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81% 포인트 올랐다. 연 2.5%대였던 3년·5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1개월여 만에 연 3%를 돌파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 채권시장이 유망 투자처였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들의 채권은 안전자산 중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양적완화 출구전략이 임박함에 따라 그간 원화채권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만기도래 물량의 재투자를 줄이고 포지션을 점점 축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채권시장에 많은 자금이 들어왔던 만큼 빠져나갈 때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계·기업에 부담, 경기회복 발목=채권금리 급등세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고채 금리를 기준금리로 쓰는 각종 금융권의 대출 금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국고채와 연동된 적격대출(주택 구입 희망자에게 장기고정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 금리 상승은 특히 서민에게 치명적이다. 저금리가 끝나고 변동금리형 대출 상품의 금리가 오르면 가계·기업의 부담이 가중돼 경기회복 속도는 더욱 느려지게 된다.

채권 보유 규모가 큰 증권사들도 평가 손실에 따라 재무건전성을 위협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62개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 규모는 지난 3월 말 현재 고유계정 기준 134조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 말(105조9000억원)보다 급증했다.

이 가운데 ‘빅5’ 증권사의 평균 채권보유 규모는 각각 10조원이 넘는다. 증권사들이 2009년부터 단기성 수신 상품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앞다퉈 판매한 영향이다. CMA 수요가 늘면 환매조건부채권(RP) 운용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일부 증권사가 프라임브로커리지(자산보관·관리, 신용공여, 컨설팅 등 투자은행의 전담중개업무) 자격을 얻기 위해 자기자본 확충에 몰두한 것도 채권 보유량이 꾸준하게 늘어난 계기가 됐다.

채권금리 상승세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말이 지나면 금리의 급등 추세가 다소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적인 금리인하 기대는 이미 사라진 상태”라고 했다.

한편 그동안 저금리 기조 때문에 확정금리형 상품의 역마진을 고민했던 보험사들은 최근의 채권값 하락을 반색하는 눈치다. 보험사들은 시장금리가 오를수록 자산운용 수익률이 높아진다. “양적완화 정책 축소는 확정금리형 상품의 비중이 높은 생명보험사들에 수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