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더 무서운 무한경쟁 교실… 교사출신 신수원 감독 ‘명왕성’
입력 2013-06-26 17:37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은 공포영화를 보는 듯 오싹하다. 외계인이나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한국의 교육현실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배경은 명문 사립고. 원어민 교사와 수업하는 영어 시간,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에 학생들의 대답은 “엄마와 홍콩 놀러갔다가 면세점에서 구찌 신발 샀어요.”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홍콩’ ‘면세점’ ‘구찌’ 등의 단어가 서울 상계동 일반고에서 전학 온 준(이다윗)의 소외감을 깊게 만든다.
어느 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유진(성준)이 학교 뒷산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현장에 떨어진 휴대전화와 학생들의 증언으로 준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유진이 이끌었던 비밀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요구받았던 준. 그는 자신을 스터디 그룹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용의자로 몰아세운 다른 학생들을 찾아가 인질로 잡는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우등생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모습을 하나씩 공개한다. 전교 2등이 전교 1등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전교 1등을 없애야 한다는 아이들의 선택은 충격적이다.
교사 출신 신 감독의 ‘명왕성’은 제63회 베를린영화제 특별언급상과 제11회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단편 ‘순환선’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카날 플러스상을 받은 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역시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의 갈등을 다룬) ‘파수꾼’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으며 저예산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애초 과도한 폭력성과 모방범죄 가능성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이 작품은 다음 달 11일 개봉을 앞두고 ‘15세 이상 관람가’로 변경됐다. 청소년이 볼 수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정작 이 영화를 봐야 할 사람은 아이들을 끝도 없는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어른들이다.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