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음세대를 세우자] 순수의 힘을 일깨워라 (최종회)

입력 2013-06-26 17:23


후배 섬기려 자원한 ‘왕틴’들에게 열정 넘치는 한국교회 희망을 본다

교육이란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것과 열망을 만들어줘야 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올바르고 정당한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라이즈업무브먼트에서 가르치는 플래닝은 ‘미션 플래닝’이라고 한다. 플래닝의 제1단계인 목표 설정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명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먹고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실현된 성경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망과 열망을 간구하며 통회하는 심령, 그로 인한 실천이 모든 교회 교육의 기본이 돼야 한다. 이것이 근본이고 본질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것을 너무나 뻔한 것,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뻔한 것을 ‘순수하게’ 열망하고 행동하고 깊이 있게 체험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 후배들을 섬기기 위해 자원한 이들을 우리는 ‘왕틴’이라고 부른다. 수능을 치르고 나면 곧바로 왕틴 훈련에 들어간다. 이들은 자신의 후배인 청소년들을 위해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들여 멘토링하고, 여름방학 내내 뜨거운 햇볕과 장맛비 속에서 수천 곳의 교회를 직접 방문하고 땅 밟기 기도를 행하며 ‘라이즈업 코리아 대회’를 준비한다. 이런 헌신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수한’ 열망을 머리와 이론이 아닌 몸과 마음과 자신의 삶에 더욱 깊이 새기고 뜨겁게 품게 된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다. 미숙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올바른 목적에 대한 도전이 가해지고 바람직한 동기가 주어지면 타오를 줄 안다. 복잡하지 않은 이 단순성이 엄청난 힘을 만들어낸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순수함’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전도 집회를 계획하고 “이 행사의 목적은 영혼구원에 있다”고 천명했으면 영혼구원만 생각해야 한다. 그 행사를 통해서 개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나 돈이 생기는 것 등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영혼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역경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순수한 것이고, 곧 능력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수한 열망을 가지기 위해선 우리 마음에 거룩한 결핍이 있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서 교회가 부흥하는 곳이 없다. 먹고살 만하니까 간절함이 없어지는 것이다. 전후의 가난과 배고픔으로 부르짖은 한국 교회는 의식주에 대한 결핍이 해소되니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고 애통할 만한 요소가 없어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게 됐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다. 마태복음 5장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계속 부족함과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애절해지고 간절해진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아주 간절해진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의 나라를 이런 심정으로 구하고 찾아야 한다. 있으면 좋다는 식으로 대충 찾는 게 아니라 없으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말 간절하고 갈급하게 찾아야 한다. 이런 심령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야성과 순수한 열망이 생긴다.

이제까지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한 내용에 대해 칼럼을 썼다. RPS(라이즈업플래닝스쿨)와 콘퍼런스, 멘토링 등 라이즈업의 교육 프로그램과 집회, 대회, 선교 활동, 교회 컨설팅을 통한 교회 적용의 원리 등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의 전제에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과 같은 싱싱한 복음, 밑바닥에서 헌신으로 승부하는 야성, 잘못된 세상을 향한 통회, 즉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복음과 영혼구원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삶을 열심히 살도록 우선순위를 바로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듯한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 주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건이 될 때 하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되면 그것은 신앙교육이 아니라 기독교 철학의 색깔을 띤 인본주의 교육이 되고 만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교육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사회적 흐름을 이기는 힘의 근원은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학문적 성과를 이루고 인간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흥이 진행된 후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있던 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당시 박 대통령은 근대화를 위해서 토속적이고 미신적인 모든 전통을 폐기시킨다. 근래에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이라며 부활시킨 샤머니즘적 전통, 즉 점술과 무당의 굿을 포함한 모든 무속 신앙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학생선교단체 CCC는 광화문의 미국 문화원 건물을 국가로부터 받고, 여의도 광장에선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필두로 수십만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집회가 허락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일까.

당시 사회적 배경에 그 답이 있다. 70년대의 한국교회는 기도하고 전도하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등으로 교회는 매일 기도하는 성도들로 넘쳐났고, 거리를 지날 때마다 전도지를 나눠주며 전도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이 영적 기운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 하나님 나라의 흐름을 주도한 것이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역으로 생각한다. 정부가 기독교에 호의적인 정책을 시행했기에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하고 있다.

기대할 것을 기대하고, 바라볼 것을 바라보고,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 땅의 성도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서 다시 일어나야 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열망이 다시 타올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천국과 지옥, 종말과 내세, 죄와 심판을 있는 그대로 각색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생명 구원의 역사를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에서 다시 시작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 밑바닥에서 순수한 복음의 움직임이 일어나면 그것이 교회와 사회 전체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힘이 들어도 이 같은 원론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결국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순수한 열망과 간절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야 한다.

우선은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변방에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는 것(마 4:14∼16)을 시작으로 일어나야 한다. 유대의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려 하지 말고, 다시 거룩한 결핍을 가지고 갈릴리로 돌아가서 흑암에 앉은 백성들과 사망의 땅에 앉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추구해야 한다. 이런 작은 자들의 몸부림에서 거대한 세상적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한 의도적인 지향점이 생긴다. 이 지향점이 우리를 순수하게 만들고, 이 순수함이 곧 능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순수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동현 대표 <라이즈업무브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