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만 나오는 이집트 드라마… 이슬람 원리주의 세태 반영

입력 2013-06-25 19:04

바쁘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이집트 연속극 ‘커피숍’ 세트장에는 여자가 없다. 감독, 작가, 프로듀서, 조명기사, 음향팀 직원은 물론이고 30명에 이르는 배우도 모두 남성이다. 여자 한 명 안 나오는 이 연속극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이집트 사회를 반영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보도했다.

커피숍은 이집트 방송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뛰어나고 바쁜 시즌인 다음달 라마단(이슬람 금식 기간)에 방영될 예정이다. TV 시청률이 높은 라마단에 여성 스타가 출연하는 로맨틱 드라마가 대거 방영되지만 커피숍은 방송계 흐름을 완전히 역행한다.

커피숍의 내용은 건전하다 못해 단조롭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대변하는 남성과 서구식 삶을 추구하는 또 다른 남성이 단골 커피숍에서 매주 논쟁한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의 논쟁은 매번 이슬람 원리주의의 승리로 끝난다. 작가 새이드 새드씨는 “우리는 단지 오늘날 이집트 시청자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야한 여자가 나오지 않아도 재밌는 프로그램임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알 하페즈’도 서구 문화를 배척하고 7세기 이전 이슬람주의를 추구하는 살라피스트(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채널이다. 알 하페즈는 지난해 라마단에 10대들이 이슬람 경전을 암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2년 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실각하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이집트 문화는 급속하게 보수화되고 있다. 신임 문화부 장관은 자유주의적 성향의 이집트문화기관 주요 회원을 대거 해고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도 카이로의 중산층 마을에는 살라피스트를 위한 카페가, 서구화된 관광도시 후르가다에는 남녀 분리 호텔이 개업하기도 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