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권과 국정원, 이제 국익 고려할 때다

입력 2013-06-25 18:39

정략에 따른 난장판 접고 순리대로 하나하나 풀어가야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우리나라 대통령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북한 최고 권력자와 만나 우리나라 수역을 내줄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공식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자 이를 놓고 정치권 한쪽에선 영토주권을 사실상 상납하려 했다고 발끈한 반면 다른 한쪽에선 문건이 조작됐다며 난리법석이다.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최고 정보기관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간여해 싸움판을 키웠다. 다른 국가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의 해상경계선과 남측의 NLL 사이의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이나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하자 덜컥 동의했다. “NLL이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됐다”고도 했다. 1999년 북한 군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측의 해상경계선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를 북한 수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NLL과 북측 해상경계선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이나 평화수역으로 만들자는 건 우리나라 수역을 북한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 정상회담 직후 노무현 정부는 NLL 양보 의혹이 불거지자 NLL선상에 남북한 등거리·등면적으로 설정한 평화수역에 합의한 것이라면서 어물쩍 넘어갔으나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북한 대변인이나 변호인 노릇을 했다거나, 미국이 제일 큰 문제라는 등의 발언을 한 것 역시 신중치 못했다. 회담에서 보다 좋은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너무 과했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NLL 포기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나라 영토를 포기한 발언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노무현 정권을 계승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차제에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 문제로 수세에 몰렸던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민주당은 회의록 전문에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눈 씻고 봐도 비슷한 말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 공개도 요구했다. 또 국정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것과 회의록을 새누리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제출한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략만 난무하고,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난장판이다. 여야는 이성을 되찾아 순리대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이전투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여야가 25일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일정에 전격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내달에 열릴 국정조사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정원은 자중해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