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빨치산 참회록’ 그들은 누구이고 왜 전향했나… 상당수가 좌파지식인 추정

입력 2013-06-25 18:34

“하산하면 죽는다.”

지리산에서 ‘조선인민유격대’로 활동했던 빨치산(partisan)은 비트(비밀 아지트)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산에 있는 날것을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고, 밤에는 마을로 내려가 어머니, 누이 같은 이들을 협박해 음식과 물자를 빼앗는 ‘보급투쟁’을 일삼았다. 심지어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들이 산 아래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야수처럼 변한 데는 ‘하산하면 죽는다’는 북한군의 세뇌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마지막 인간병기인 이들은 ‘우리가 하산하면 조국이 패망한다’고 믿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국군에 포위된 순간 죽었구나 싶었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말은 “너희는 살았다”였다. 25일 한국전쟁기념재단(이사장 김인규)이 공개한 전향 빨치산의 문집 ‘지리산 빨치산의 참회록’(이지출판사)에는 이들이 포로로 잡히던 장면이 담겨 있다.

한 빨치산은 수필에서 “국군들은 우리의 심리를 잘 알아주며 ‘왜 여태까지 산에서 있었니. 빨리 내려오지. 고생 많이 했지. 배고프지’라며 건빵과 따뜻한 밥, 담배를 주었고 치료를 해주는 온정을 베풀었다”(참회록2)고 기록했다. 다른 작품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포로가 된 빨치산들은 무조건 총살시킨다고 산에서 선전해왔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국군들은 포로가 된 나에게 따뜻한 밥과 담배를 주었고 수용소에 올 때까지 따뜻한 형제의 손길로 대해주었다.”(참회록1)

산에서 함께 생활하던 동료들이 굶주림과 감시 속에 허무한 죽음을 맞자 환멸을 느껴 전향했다는 고백도 있었다. “하루 24시간 당 생활을 통한 놈들의 채찍질에 못 이겨 안타깝게도 조국 대한의 따뜻한 품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의 길을 간 불쌍한 내 형제들이 있습니다.”(참회록2)

빨치산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빨치산의 ‘왕국’ 지리산에서 전설적 영웅으로 불리던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은 사살됐다. 그의 시체는 ‘빨치산의 최후’를 깨우치는 전향교육 자료로 사용됐다.

‘함평 11사단 사건’으로 잘 알려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도 있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전남 함평 등에서 빨치산 토벌작전 중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이 집단 학살됐다고 발표했다.

문집에 등장하는 전향 빨치산 상당수는 좌파 지식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작품에서 일본 유학을 다녀왔거나 대학에 다녔거나, 소학교 교사였던 ‘경력’을 소개했다. 또 대부분의 작품에 ‘프롤레타리아’, 카를 마르크스의 영문 표기인 ‘Marx’ ‘Russia’ 같은 영어 단어와 공산주의 이론 서적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나온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