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아전인수 중국 역할론 경계
입력 2013-06-25 18:30
‘중국 역할론’은 한반도 문제를 논할 때 어느덧 대세가 돼 버렸다.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정상의 목표가 같다”고 밝힌 것은 중국 역할에 더욱 기대를 갖게 했다.
중국이 천안함 사건 와중인 2010년 5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수용했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당시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비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는 중국 역할론과 관련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한국 언론은 심지어 중국이 북한을 포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이는 여론과 보조를 맞춰 진행된다.”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사회과학원 남북연구센터 주임은 지난주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중국 내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는 뤼 주임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사람이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국내 한 일간지가 “최룡해 북한 총정치국장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했을 때 북·중 연합군사훈련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보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는 사실무근인 경우가 빈번하며 이는 일종의 선전 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중·조(中·朝)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는 연합군사훈련을 언급한 부분이 있지만 양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는 지금 연합군사훈련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이 한반도 정책을 크게 바꿔 곧 남한에 의한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할 것이라고 쓴 매체도 있었다.
왜 이처럼 씁쓰레한 일들이 생기는 걸까. 중국을 방문한 고위 인사들 일부가 중국 역할론과 관련해 자신의 임의적인 판단이나 의도성을 가진 내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한국과 관련해서는 낙관적인 상황을 각각 부각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달 초 있었던 정승조 합참의장의 방중은 중국이라는 존재를 다른 측면에서 깨닫게 해줬다. 정 합참의장이 방중 이틀째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북해함대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톈중(田中) 사령관과의 만남은 막바지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출장 중인 톈중 사령관이 확답을 주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면담은 성사됐지만 정 합참의장 일행은 함정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만 2함대 사령부와 북해함대 사령부 사이에 이미 설치돼 있는 핫라인을 시험 통화하는 ‘쇼’를 한 번 연출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군 인사들은 귀국한 뒤 중국 측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고 떠벌릴 뿐이다. 모두들 중국의 역할을 말하지만 국가안보 차원과는 다른 얘기라는 게 칭다오 현장을 지켜본 느낌이었다.
다시 뤼 주임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중국 내에는 중국의 역할과 관련해 왜곡된 사실이 국내에서 보도되는 데 대해 이를 의도된 선전 행위로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중국과는 다른 한국의 언론 환경을 전제하더라도.
일부 국내 언론을 통해 은연중 드러나는 한국 측의 ‘조급함’을 지켜보는 중국은 어떤 기분일까. 남북한 사이에서 ‘꽃놀이 패’라도 가졌다고 느낄까. 중국 역할론을 말하되 좀 더 당당하고 차분해져야 할 때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