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대화록’ 충돌] 盧 “남북·美 3자 회동하자” 김정일 “나쁘지 않다”
입력 2013-06-24 22:34
공개된 2007년 남북회담 대화록 주요 내용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이 전격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2007년 10월 3일 오전 9시34분∼11시45분에 평양 백화원초대소 영빈관에서 진행됐던 1차 정상회담이 1∼59쪽에, 당일 오후 2시30분∼4시25분에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2차 정상회담이 그 뒷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화는 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어갔으며, 간간이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여했다.
◇두 정상 기본입장 주고받아=노 전 대통령은 1차 회담 때 남북관계의 현실과 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평화정착, 경제협력 확대, 통일과 화해 등의 3가지 주제에 대한 토론을 제안하면서 우리 측의 기본 입장을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평화정착 문제와 관련해선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게 필요하다”면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경협 문제를 거론하면서는 개성공단 2단계 개발,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서해 남북공동경제 특구 설치, 금강산관광 확대 등을 내놓았다. 통일 문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이산가족 문제와 쌍방 군인 유해 발굴 사업,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북단일팀 참가 필요성 등을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 제안들에 대해 “해결할 문제들이지만 먼 빈 구호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다”면서 크게 호응하지 않는 태도였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6·15 선언도 5년 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 구호가 되고, 빈 종이,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면서 “새 선언이 뭐 필요하겠는가.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그 가치 밑에서 앞으로 단계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제시됐다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특히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남북한과 미국 간 3자 회동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NLL 재검토 의제는 김 위원장이 제안=김 위원장은 일련의 발언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먼저 꺼냈다. 김 위원장은 “적대관계를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지가 있다는 걸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를 하나 던져 놓을 수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측 군사경계선과 남북의 북방한계선 사이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냐. 양쪽 군대가 다 물러난 조건에서 공동어로를 하자”고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예, 아주 나도 관심이 많은…”이라고 발언했고, 발언 도중 김 위원장이 다시 끼어들어 “그래서 그거로 가야지요”라고 맞장구치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배석한 김 부장도 “아무래도 (공동어로를 설정해) 물고기를 잡아놓으면 분배 몫이 논의될 것 같습니다”라면서 역시 의제화에 적극성을 나타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사실 중국 배가 잡아가는 것만 남북이 협력해서 잡으면 양쪽이 다 남습니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후 평양에서 국방장관 회담에서 NLL 문제를 토론하자는 뜻도 밝혔다.
◇8쪽 발췌록은 NLL 문제 집중 발췌=국정원이 전문에서 발췌한 8쪽짜리 발췌본은 NLL 문제가 5쪽으로 절반 이상이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북핵·경수로 문제, 대미관계 및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문제, 대일관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발췌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오후 회담에서 NLL 문제에 적극 발언했다. 전체적인 뉘앙스로 볼 때 노 전 대통령은 NLL 문제 해소를 포함해 경협에 방점을 둔 ‘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치’를 강조했고 김 위원장은 NLL에 대한 우리의 헌법 문제를 비롯한 법적 근거를 양측이 없앤 뒤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손병호 백민정 김현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