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시즌 5승… ‘뉴 골프여제’ 우뚝, 캘린더 그랜드슬램 도전

입력 2013-06-24 18:43


소녀는 골프광인 아버지와 함께 새벽에 TV 중계를 지켜보며 박세리(36·KDB금융그룹)를 응원했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 끝에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자 소녀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박인비(25·KB금융그룹)의 마음속에 ‘세리 언니처럼 LPGA 무대를 호령해 보고 싶다’는 꿈이 싹텄다. 15년이 흐른 지금 ‘세리 키즈’ 박인비는 그 꿈을 이뤘고, 이제 자신의 영웅이었던 박세리를 뛰어넘어 세계여자골프 역사를 새로 쓸 태세다.

◇LPGA 접수한 ‘조용한 암살자’=세계랭킹 1위 박인비는 2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나클 골프장(파71·6389야드)에서 열린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시즌 5승을 달성했다. 1∼3라운드 합계 12언더파 201타를 친 박인비는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과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 들어갔다. 박인비는 18번홀(파5)에서 치러진 연장 1차전에서 세 번째 샷을 홀 1.2m에 붙였고, 유소연의 세 번째 샷은 그린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유소연의 버디를 노린 어프로치샷은 홀을 살짝 빗나갔다. 반면 박인비의 버디 퍼트는 내리막 경사를 타고 흘러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승 상금은 30만 달러(약 3억4000만원). 박인비의 LPGA 투어 통산 승수는 8승이 됐다.

박인비는 올해 열린 14개 대회에서 5차례나 정상에 올라 2001년과 2002년 박세리가 세운 한국 선수 한 시즌 최다승 기록(5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 시즌 절반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박인비는 한국 선수 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LPGA 투어 전체를 통틀어 시즌 최다승 기록은 1963년 미키 라이트의 13승이다. 2000년 이후로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퇴)이 2002년 11승, 2005년 10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랜드슬램을 향하여=박인비는 올해 이미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해 메이저대회 2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남은 3개의 메이저대회에서 1승만 더 보태면 한국 선수 한 시즌 메이저 최다승 기록도 새로 쓴다. 올해 남은 메이저대회는 바로 다음 주 US여자오픈과 8월 초 브리티시여자오픈, 9월의 에비앙 챔피언십이다.

박인비는 이르면 올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박인비는 이미 2008년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어 브리티시여자오픈이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한국 선수 최초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주인공이 된다.

또 현재의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한 해에 열리는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은 4개 메이저대회 체제 이후 아직 달성한 남녀 선수가 한 명도 없을 만큼 난공불락의 대기록이다.

박인비는 “US오픈을 앞두고 좋은 결과를 내서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롱게임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이점을 보완해 다음 주에도 좋은 성적을 내겠다”면서도 “LPGA 투어 사상 몇 번째라거나 누구의 기록을 깬다거나 하는 말들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