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대화록’ 충돌] 코너몰린 국정원의 ‘돌발카드’… 靑과 교감설도 확산

입력 2013-06-24 18:41 수정 2013-06-24 22:39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결정한 것은 정치권의 예상을 벗어나고 그간의 국정원 업무관행과 역풍을 무릅쓴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어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설’이 커지고 있다. 국정조사 및 대대적 개혁론으로 수세에 몰린 국정원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정원은 대화록 공개를 결정하면서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현 시점에서는 대화록이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공개될 경우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한반도 안보 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 등이 공개될 경우 논란이 그치기는커녕 발언 맥락 등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더욱 극심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이 밝힌 이유만으로는 ‘기밀을 유지할 국정원이 앞서서 기밀을 해제하겠다고 나선’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정원이 청와대 등 여권 지도부와 사전에 조율한 뒤 대화록 공개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권 내부에는 ‘NLL 포기’ 발언 등이 담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만큼 국정원이 ‘비밀 해제’라는 방법으로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원본은 국회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공개가 가능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사전 교감설을 부인했지만 국정원의 결정을 두둔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고심 어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남 원장의 단독 플레이라는 얘기다.

남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정치권을 향해 모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재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시절 연루된 대선·정치 개입 의혹에 시달리면서 야당으로부터는 국정조사 압력을 받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대대적인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때문에 국정원이 정치권을 향해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핫이슈를 주도하면서 공세로 전환할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정보를 쥔 권력기관의 힘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민감한 남북관계 사안을 놓고 국익보다 조직보호 논리를 우선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국정원이 박근혜정부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을 보였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