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단 15분·나머지는 고백과 나눔, 서로의 마음 나누다보면 치유·회복이…

입력 2013-06-24 17:46


한국회복사역연구소, 중독자와 가족 위한 회복예배

‘회복은 일생의 여정입니다.’

예배 장소에 들어서자 벽보에 내걸린 문구가 눈길을 붙잡았다. 10명의 참석자들은 원목 탁자를 앞에 두고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주보에 안내돼 있는 가이드라인을 한목소리로 낭독했다.

“각 사람은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끼어드는 말이나 충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눈 것은 이 자리에 두고 가십시오.…”

지난 23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 한국회복사역연구소(소장 고병인 목사)에서 열린 중독자들을 위한 회복예배의 백미는 ‘고백과 나눔’이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매주 주일 오후에 열리고 있는 회복예배는 이날이 15회째. 본인 또는 배우자, 자녀 등이 겪고 있는 각종 중독(알코올·도박·게임·성 등)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아픔을 나누면서 서로 치유를 돕는 자리다.

회복예배에서 고 목사의 설교시간은 단 15분. 나머지 시간은 참석자들의 고백에 할애됐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이름 대신 별칭을 사용했다. 잠시 흐르는 침묵을 깨고 ‘바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중반 여성이 말문을 열었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그동안 저는 제 인생보다는 그저 아내 역할만 충실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술을 많이 먹은 날 행패를 부리면 그저 다 받아줬고요. 외상 술값 갚아주는 건 기본이었고…. 제가 오히려 남편의 술 중독을 키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미친 짓이었어요.”

감정이 복받친 그녀의 고백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훔치며 공감을 표했다.

별칭을 밝히지 않은 40대 중반의 한 여성도 속 얘기를 털어놨다. 고등학생인 아들 2명 모두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는데, 아무래도 본인 때문인 것 같다는 것. 게다가 남편도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사연을 듣자 예배시간 줄곧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그의 얼굴 표정에 드리운 그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밖에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한 중년 여성과 고부간의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도 저마다 사연을 털어놓았다. 각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사연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고 목사는 “회복예배는 중독자나 중독자를 둔 이들이 어떤 정보나 생각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토록 하는 자리”라며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은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