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정무수석 없는 청와대

입력 2013-06-24 17:54


청와대 정무수석은 수석 중에서도 핵심적인 자리다. 정무, 행정자치, 국민소통, 사회안전 등 4명의 비서관과 적지 않은 수의 행정관을 거느리고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는 차관급 요직이다. 정무수석은 현 정부 청와대에서도 비서실장 이하 9명의 수석 중 국정기획수석에 이어 두 번째 서열에 랭크돼 있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략에 맞춰 국회와 여야 정치권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기능은 의회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역대 대부분의 대통령이 측근이나 중량감 있는 인사를 정무수석에 기용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평생을 정치권에서 보낸 김영삼 대통령은 가신 출신의 이원종씨를 정무수석에 앉혀 자신과 여의도의 가교 역할을 하도록 했다. 국회의 도움을 받아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도였다. 김 대통령은 이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관행을 깨고 차관급 대신 장관급 예우를 해 줬다. 막판에 상관인 비서실장과 갈등을 빚었지만 김 대통령은 그의 역할에 매우 만족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소통할 요직 23일째 공석

뒤이은 김대중 대통령도 정무수석의 기능을 중시했다. 집권 초기 정무수석들이 성에 차지 않자 정치로 잔뼈가 굵은 김정길 행정자치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현직 장관을 차관급인 수석에 기용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통령은 김 정무수석의 업무추진비를 다른 수석들보다 많은 비서실장에 맞춰 지급하는 등 각별하게 배려했다. 김 수석은 여야의 폭넓은 인맥을 동원해 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과 경제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사 원칙론을 강조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정무기능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정권 말기에는 정무수석을 아예 공석으로 둬 버렸다.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정치권과 충돌하고, 국민 지지도가 바닥을 맴돈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 여의도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나 여론악화에 직면한 중·후반기엔 정무수석에게 많은 힘을 실어줬다. 특임장관을 신설해 정무기능을 한층 강화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특임장관제를 폐지한 박 대통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이정현씨를 첫 정무수석에 기용했다. 최측근으로, 여권에 보기 드문 호남 출신인데다 친화력이 좋아 소통에 취약한 박 대통령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정무수석이 아니다. ‘윤창중 성추행’ 파문 직후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무수석은 23일째 공석이다.

대통령 보좌할 수석 충원 시급

박 대통령에게 지금은 매우 엄중한 시기다. 정권초기 새 국정과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무수석이 밤낮없이 여야 지도부를 찾아다니며 입법 협조를 구해야 할 때다. 하지만 현재 여야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과 국정원 국정조사 논란으로 사생결단식 대립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박 대통령에게 공격의 칼끝을 겨누는가 하면, 범국민서명운동을 포함한 장외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미하긴 하지만 대학가에선 시국선언, 광화문에는 촛불이 등장했다. ‘6월 민생국회’는 물 건너간 게 확실하다.

박 대통령은 어제 국정원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서한에 대해 불 관여 입장을 밝혔다. 정무수석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느 누구와 상의해서 그런 발언을 내놨는지 자못 궁금하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정무수석 임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수첩에 이름이 오른 측근들 중에서 인사를 하려는 생각을 정말이지 이제 버려야 한다. 가슴을 열고 널리 인재를 구하라는 게 국민의 한결같은 요구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