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민해] 여자고등학교가 필요한가요?

입력 2013-06-24 18:53


“21세기는 여성적 가치의 시대 … 부드러운 조정자 역할 할 수 있는 인재 키워야”

최근 여학생만 다니는 고등학교 중에 ‘여자고등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가 있다. 양성평등을 위하여 ‘여자’라는 용어를 뺐다는 것이다. 남고도, 남녀공학도 ○○고등학교인데 여고만 ○○여자고등학교라고 하니 학교 이름에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나름 의미 있는 주장이다. 근대 교육기관이 생겨날 때 남성 중심 교육기관이 먼저 생긴 뒤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선구자들에 의해 여성 교육기관이 새로 만들어지다 보니 굳이 ‘여자’라는 용어를 붙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얼핏 든다.

그러나 여학교의 출발은 남학교보다 늦지 않았다. 남학교인 배재학당 1886년, 관립한성학교(경기고) 1899년, 양정의숙 1905년, 휘문의숙 1906년, 보성중학교가 1906년이고, 여학교인 이화학당 1886년, 정신여학교 1887년, 배화학당 1898년, 진명여학교·숙명여학교 1906년, 관립한성여학교(경기여고)가 1908년 설립된 것을 보면 남학교와 여학교는 거의 동시대에 출발한 것이다.

물론 봉건시대 직후의 개념이므로 남성중심주의가 학교명에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사실 학교 이름에 여자를 넣고 빼는 것에 대한 논의는 핵심이 아닐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을 더욱 훌륭하게 교육시켜야겠다는 의지, 나아가 훌륭한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겠다는 목표가 아닐까. 그런 목표가 반영된 학교명이라면 굳이 명칭을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남녀공학이 많아진 요즘에 오히려 여고가 갖는 장점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5년에 중학교 1학년이던 학생 6908명이 고교에 들어가 수능 시험을 칠 때까지 6년간 성적을 추적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여고와 남고 학생들이 남녀공학 학생보다 4∼7점가량 높았다. 수리영역은 남고생, 여고생, 공학 남학생, 공학 여학생 순이었고, 언어·외국어 영역은 여고생, 남고생, 공학 여학생, 공학 남학생 순이었다. 연구진은 남녀공학 학생들이 휴대전화, 컴퓨터 채팅, 홈페이지·블로그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썼으며 이성교제 기회가 많고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커 여가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학업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 성적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물론 남녀공학이 갖는 장점도 많다. 남학생은 여학생의 치밀한 사고와 깔끔하게 정리된 노트필기 방법을 배우고, 여학생은 남학생의 대범함과 의리, 스포츠맨십, 끝까지 파고드는 탐구 자세 등을 배운다. 남녀공학 학생들은 대체로 몸과 마음가짐이 바르고 깔끔하며, 예의가 바르고, 언어가 순화되어 있으며,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며 상대방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고자 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몇 해 전 “여학생이 성공하려면 여학교를 가라”며 웰즐리를 비롯한 미국의 10대 명문 여대를 꼽았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성은 상대적으로 리더가 되기 힘든 반면 여학교에서는 리더로 성장할 기회가 많다”고 했고, “여자끼리 모이니 외양보다는 능력 계발에 더 힘쓴다”고 했다. 또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여성적 가치의 시대’라고 보고 영민하고, 분석적이며, 설득적이고, 특유의 친화력을 가진 여성들이 리드하는 시대라고 했다.

이러한 미래학자들의 예견은 이미 각계각층의 여성 파워 등장으로 증명되고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를 필두로 뉴질랜드 헬렌 클라크 총리, 핀란드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 독일 메르켈 총리, 호주 길라드 총리, 아르헨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태국 잉락 친나왓 총리 그리고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성 지도자는 이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남녀공학도 장점이 있지만, 여학교가 가지는 여성교육의 장점을 특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더 숙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성 특유의 장점을 가진 리더로서 치밀하게 분석하여 일을 추진하며 때로는 부드러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은 여학교가 더 낫지 않을까.

민해 혜원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