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보기관, 대서양 광케이블 해킹… ‘템포라’ 프로그램 운용
입력 2013-06-23 18:46
미국이 ‘프리즘’을 이용해 전 세계의 전화통화와 이메일 등을 무차별적으로 도청한 데 이어 영국은 ‘템포라’라는 프로그램을 동원해 대서양과 북미를 잇는 광케이블을 해킹하는 등 미국보다 더 광범위한 감시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는 2011년 가을부터 해킹으로 얻은 이메일과 전화통화 등 정보를 미 국가안보국(NSA)과 공유해 분석하는 등 무차별적 감시활동을 해왔다고 가디언이 폭로했다.
23일 가디언에 따르면 GCHQ는 템포라(Tempora·라틴어 ‘시간’의 복수)로 불리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잠재적 위험인물과 민간인을 감시했다. GCHQ는 지난해 매일 6억건의 전화통화 기록과 200개 이상의 광케이블을 해킹했다.
광케이블에 초당 10기가바이트의 정보가 흐르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만 21페타바이트(100만 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정보를 해킹한 것으로 이는 전체 영국 도서관에서 하루에 다루는 정보의 192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국내외 감청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민간인 감시망으로 영국이 미국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GCHQ는 수집된 정보를 영국 남서부 뷰드의 GCHQ 기지에서 최장 30일 동안 보관하면서 300명의 분석관을 동원해 분석했다. 이곳에서 NSA요원 250명도 함께 자료를 공유했다. GCHQ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효율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MVR(Massive Volume Reduction)’이라는 고성능 필터를 사용해 특정 주제어와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 ‘표적단어(Selector)’만 추출했다. 신문은 GCHQ가 정한 표적 단어가 4만개에 이르며 NSA도 3만1000개를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또 GCHQ가 통신케이블 해킹을 위해 통신 관련 민간업체와 비밀리에 ‘감청 파트너’ 협정을 맺고 대가로 회사에 돈을 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정보당국 소식통은 통신사업 허가권을 볼모로 업체에 사실상 협력을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GCHQ는 내부 직원 안내서에서 협력 업체의 존재가 알려지면 ‘고도의 정치적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며 철저한 보안도 당부했다. 신문은 정보당국의 감청규제를 담은 영국 법은 도청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민간인 감청금지도 없어 남용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이어 영국도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독일은 자비네 로이토이서-슈나렌베르거 법무장관이 직접 성명을 내 “할리우드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며 “영국에 해명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