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피할 곳 없는 서울 도심 ‘가로수 그늘 실종 사건’
입력 2013-06-23 18:33
도시의 가로수는 사계절 내내 주민들의 민원을 야기한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불만부터 “가지가 전깃줄에 닿아 불안하다” “나무가 죽어가니 새로 심어 달라”는 주문까지 다양하다. 올 여름에는 ‘가로수 그늘’이 문제가 됐다.
서울 강남구청 홈페이지 민원코너에는 최근 “점심시간에 길을 걷다보면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 그늘이 없다. 날도 더운데 왜 이렇게 가지를 많이 잘랐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23일 둘러본 청담동 일대와 삼성동 코엑스 주변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버섯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무 위쪽 4분의 1 정도만 가지가 남아 있고 그 밑으론 앙상한 줄기뿐이다. 남아 있는 가지의 잎도 적어 그늘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군자동 아차산역 사거리부터 군자교 사거리까지 2㎞ 구간의 가로수는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가지도 앙상했다. 군자역 인근에 사는 박모(60)씨는 “왕복 8차로 아스팔트 지열이 인도에까지 올라오는데 가로수 가지를 모두 잘라 그늘마저 없으니 더 덥다”고 했다.
‘가로수 그늘 실종 사건’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울 거리의 허파인 가로수는 1271개 도로에 은행나무(40%) 양버즘나무(26%) 느티나무(11%) 등 45종 28만4305그루가 있다. 이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은 그동안 한국전력공사가 담당했다. 고압선과 가로등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었는데 올해부터 이를 서울시가 넘겨받았다. 가로수 가지가 좌우로 넓게 뻗도록 길러 도시 미관을 개선한 충북 청주처럼 서울 가로수도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잡으려면 첫해에 가지를 많이 잘라줘야 해서 지난 봄 25개 구에서 모두 예년보다 강도 높은 가지치기를 했다”며 “목표 수형을 갖추려면 3∼4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로수 가지를 너무 많이 잘라 그늘이 없는 건데, 너무 조금 자르면 태풍에 쓰러질 수도 있다. 가로수 문제는 이래저래 곤혹스럽다”고 했다.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