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시설 ‘길벗 화천공동체 생명나루’ 장애청년들, 밥짓고 텃밭 가꾸며 ‘자립 걸음마’

입력 2013-06-23 17:51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본인의 사후 자녀들의 삶이다. 이들은 ‘내 아이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에 앞서 자녀들 스스로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원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근심 속에 인천 지역 장애자녀가 있는 14 가정의 부모들이 강원도 화천에 아름다운 한옥 두 채를 지었다. 자녀들이 장애를 이겨내고 자연 속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 21일 방문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길벗 화천공동체 생명나루’(화천 생명나루)는 장애인 청년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스스로 생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울에서 150㎞, 춘천을 지나 북한강을 따라 자동차로 2시간30분을 달려가야 하는 거리지만, 자연 속 생활공동체는 그런 불편함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평온했다.

198㎡(60평), 132㎡(40평)로 지어진 한옥 두 채는 목재로 만든 문과 창틀, 고풍스런 기와, 그리고 처마 밑 작은 종까지 자연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야산 중턱에 지어진 까닭에 생명나루는 산속에 안긴 형태였으며, 왼편의 낙엽송 숲을 통과하는 바람이 포근하면서도 시원했다.

이날 생명나루에서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23∼26세 장애인 청년 4명이 지난 두 달간 땀 흘려 재배한 채소를 수확하고 있었다. 본격 정착 이후 첫 수확이다. 모두 자폐를 겸한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근심의 그림자가 없었다. 앞마당에 조성한 330㎡(100평) 규모의 텃밭에는 청년들과 교사들이 함께 키우고 있는 오이 호박 상추 고추 토마토 등 30여종의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첫 수확한 채소는 종이상자로 8상자 분량으로 인천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모와 인천 지역 장애인 시설 등에 보내질 예정이다.

화천 생명나루는 이들의 부모를 비롯해 ‘함께걷는길벗회’(길벗회)’에서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는 장애인 자녀의 부모들이 재정을 모아 세워졌다. 지난해 첫 번째 숙소동이 세워지면서 8명의 장애인 청년들이 인천과 화천을 오가며 적응훈련을 시작했고, 올해는 4명의 장애인 청년들이 정착 생활하고 있다.

생명나루는 요양시설이 아닌 자활시설이다. 2명의 교사들은 장애 청년들에게 밥 짓기와 설거지 등 스스로 생활하는 방법을 꾸준히 가르친다. 또 유기농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 있다. 매월 소요되는 일정액의 생활비는 현재 부모가 부담하고 있지만, 수년 내 지역주민과 함께 매실과 된장 등을 생산·판매해 스스로 책임지게 할 계획이다.

화천 생명나루에 상주하는 이용인 길벗회 강원지부 사무국장은 “원예치료와 자연생활을 통해 아이들이 전보다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앞으로 지역사회 내 다른 장애인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생명나루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벗회는 현 상임이사인 대한성공회 한용걸 신부가 설립한 복지단체로 주간단기보호센터와 장애인보호작업장 등을 운영하며 장애인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윤정현 성공회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화천=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