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판도라 상자’ 개봉 박두… 전두환 비자금 나올까
입력 2013-06-23 17:46
‘싱가포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까. 국내 투자자들의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중 한곳인 싱가포르와의 조세조약 개정안이 오는 28일 발효되면서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등 싱가포르를 경유한 편·불법 자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기준 국내 개인·법인의 투자가 두 번째로 많았던 조세피난처다.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투자잔액이 가장 많은 조세피난처는 말레이시아로 36억9100만 달러(약 4조2500억원)에 달했다. 싱가포르가 35억4000만 달러(약 4조800억원)로 2위, 케이맨제도가 27억4600만 달러(약 3조1688억원)로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싱가포르는 2010년까지 버뮤다제도에 비해 투자잔액이 적었지만 2011년 한해 동안 투자액이 무려 10억1700만 달러(약 1조1736억원)나 급증하며 순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개인 투자액은 5100만 달러에서 5300만 달러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법인 투자액이 22억3600만 달러에서 32억5000만 달러로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급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같은 기간 불법외환 거래가 적발된 조세피난처 역시 홍콩이 180건(1조7553억원)으로 가장 많았지만 필리핀(6807억원)에 이어 싱가포르(5181억원)가 3위를 차지했다.
개정되는 한·싱가포르 조세조약은 자국법을 이유로 상대국으로의 금융정보 제공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세당국은 싱가포르 국세청으로부터 역외탈세 의심자에 대한 계좌정보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국씨가 세운 페이퍼컴퍼니(서류상 존재하는 유령회사) ‘블루아도니스’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조약 발효 이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계좌정보 요청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조약이 개정된다 해도 실무 차원에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계좌를 특정하고, 탈세 연루 여부 등 계좌정보 요청 사유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에 유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박 의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적발된 역외탈세는 모두 537건으로 세금추징액은 2조6128억원이다. 건당 최고 탈세액이 2008년 638억원, 2009년 640억원, 2010년 2134억원, 2011년 4101억원 등으로 갈수록 대형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 중 수사기관에 고발 및 통고처분된 것은 45건으로 전체 역외탈세자의 8%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년간 개인 18명, 법인 20곳에 대해 불법 외환거래 사실을 검찰에 통보했지만 사법처리가 된 경우은 극히 미미했다. 검찰은 38건 중 기소유예 2건, 내사중지 2건, 입건유예 5건, 혐의없음 5건 등 14건에 대해선 사실상 무혐의 처분했다. 나머지 20건은 약식 기소해 건당 평균 174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박 의원은 “불법 외환거래를 한 경우 위반행위를 통해 취득한 자산을 몰수하도록 돼 있지만 이들 중 실제 몰수 추징한 사례는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