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한국, 北 핵 위협엔 단호하되 대화 손길 내밀어야”
입력 2013-06-23 18:29 수정 2013-06-23 22:03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73) 독일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남북한이)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상호간에 정치적 신뢰가 중요하며, 단계별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을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더작센주(州) 고슬라르에서 개최된 한·독 수교 13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가우크 대통령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히 남쪽의 지도자들이 주도해 긴장을 완화시키는 게 좋다”고 주문했다. 그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남북한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국이 용기를 내서 두 개의 분단국가를 하나의 대한민국으로 만들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향후 남북 문제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기독교는 지금까지 억압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 왔다. 이제 그 대상이 북한 동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형제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중도 퇴진한 크리스티안 불프 전 대통령에 이어 11대 독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옛 동독 출신으로 20대에 목사가 된 뒤 교회를 기반으로 민주화·인권 운동에 앞장서 오다 1990년 통일 이후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꾸미지 않는 소탈함과 편안한 화법으로 유명한 그는 임기 1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70%대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이날 20분간 이어진 축사에서도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좌중을 압도해 양국 참석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가우크 대통령은 경험자로서 남북통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대해 단호히 반응하면서 대화의 손길을 끊임없이 내밀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볼 때 평화적 통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유럽이 25년 전 그랬듯 한국이 오랜 기간 잇따른 어려움에도 문화 국가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했듯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면 성공적인 통일을 이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과 별개로 북한 내 인권 침해에 대해선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독일의 통일 과정과 경험을 열성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지만 당시 독일과는 차이가 있다. 내전을 겪은 한국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라고 밝혔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신동혁씨, 최근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당한 탈북자들의 얘기와 함께 70, 80년대 중·동유럽 내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해 독일이 침묵했던 과오를 언급하며 “38선 뒤에는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국가체제뿐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손이 아닌 국민 간의 교류를 통해 통일을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옛 서독의 청년들도 동독보다 암스테르담과 파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고,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도 글로벌화돼 가고 있다. 하지만 누가 비난하겠는가. 다만 이런 무관심 속에 상처는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적대적 감정과 선입견을 없앨 수 있도록 자유를 박탈당한 북한 동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우크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무한애정을 나타내며 재임기간 내 꼭 방문하고 싶다는 뜻도 피력했다. 그는 “한·독 관계는 냉전시대 훨씬 전부터 시작됐고 참혹했던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에서도 양국 교류는 차단되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강한 나라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는 달리 유교주의에 입각한 사회이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이젠 원조 수여국이 돼 산업국가 대열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행사에는 한국 정치권에서 독일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민주당 원혜영 의원을 비롯해 의원과 교수 등 30여명이, 독일 측에선 친한파로 불리는 하르트무트 코쉭 연방 재무차관과 독한의원친선협회장인 슈테판 밀러 의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고
슬라르(독일)=글·사진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