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정 표현… ‘드라마 발레’ 대표작 2편 무대에
입력 2013-06-23 17:16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 고전발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차이콥스키’나 ‘오네긴’은 다소 낯설 수도 있겠다. 무용수의 화려한 군무와 테크닉보다는 감정 표현과 연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격정과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연기자가 돼야 한다. ‘드라마 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두 편이 연이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 ‘차이콥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28∼30일)=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고독했다.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고 공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휘청거렸다.
스스로도 괴로워했던 동성애 성향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만났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돈으로 그를 후원하던 귀부인은 어느 순간 냉정하게 후원을 끊었다. 발레 ‘차이콥스키’는 창작열에 불타던 청년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만큼 내면 연기와 감정 표현이 절실한 작품이다.
러시아 연출가 보리스 에이프만(66)은 차이콥스키의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을 위해 두 명의 발레리노를 내세웠다. 한 명은 현실의 차이콥스키, 또 한 명은 정신적 혼돈을 표현하는 내면의 차이콥스키. 이 두 명의 자아가 함께 춤추며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해내는 2인무가 이 작품의 백미다.
차이콥스키의 생애에 천착해온 연출가 에이프만은 2006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특히 ‘차이콥스키’는 그에게 러시아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황금마스크상을 안긴 작품이다. 그는 이 발레에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작품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켰다.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배경 음악은 ‘교향곡 제51번 E단조’, ‘현을 위한 세레나데’, 교향곡 제6번 B단조 ‘비창’ 등 친숙한 차이콥스키 작품. 클래식 팬이라면 차이콥스키의 쓸쓸한 음악을 배경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눈 여겨 봐도 좋을 듯하다.
차이콥스키 역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과 이영철, 내면 역에는 박기현과 정영재, 차이콥스키 부인 역으로 이은원과 박슬기가 출연한다. 1993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09,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공연된다.
◇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7월 6∼13일)=귀족 청년 오네긴에게 첫눈에 반한 순수한 시골처녀 타티아나, 풋풋한 그녀의 고백을 오만하게 거절하는 오네긴. 그리고 몇 년 후, 다른 이의 아내가 된 타티아나를 향한 오네긴의 뒤늦은 사랑, 엇갈리는 운명에 목 놓아 울부짖는 타티아나.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원작 소설과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서정적 음악 위에 탄생된 발레 ‘오네긴’의 내용이다. 이 작품이 국내 관객에게 처음으로 각인된 것은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이 내한했을 때다. 오네긴의 구애를 뿌리친 후 크게 오열하던 타티아나 강수진은 커튼콜에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관객 또한 막이 내린 후에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오네긴’은 보고 싶어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다. 공연권을 따내기도 어렵고, 흔한 영상물을 보기도 힘들다. ‘오네긴’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존 크랑코 재단이 작품 수준과 희소성을 유지하고자 쉽게 공연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드라마의 힘 때문이다. 오로지 두 주인공의 연기에 집중한다.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 주요 테마인 만큼 사랑하는 이와 외면하는 이의 심리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가장 큰 이슈는 캐스팅이다. 20년 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온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예나가 ‘오네긴’으로 고별 공연을 갖는다. 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가 국내 관객에게 처음으로 타티아나를 선보인다. 서희는 지난해 ‘오네긴’의 성공적인 공연을 발판으로 ABT 수석무용수로 발탁됐고, 미국 뉴욕타임스의 ‘2012년 올해의 무용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희의 파트너는 이탈리아 출신 ABT 수석무용수인 로베르토 볼레. 국내 관객에게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함께 춤추고 싶어 하는 파트너로 꼽힌다. 그 외 황혜민-엄재용, 강미선-이현준과 신예 이동탁이 무대에 오른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