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재미 작품에 담다… 윤재갑 기획전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입력 2013-06-23 17:06
2011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커미셔너를 맡은 윤재갑(45·중국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디렉터) 큐레이터는 서른 살 즈음, 네팔 친구의 초대로 안나푸르나를 여행했다. 해발 4000m에 위치한 마을까지 고생 끝에 도착하고 보니 온몸이 불덩이였다. 고약 같은 것을 뜨거운 양젖에 타서 먹은 후 잠이 들었다.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깨어나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문을 열었더니 쏟아지는 햇살 아래 멀리 히말라야가 보이고 문지방에는 붉은 꽃이 가득했다. 노래를 부르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그는 할 말을 잊었다. 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이후 그가 전시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고를 때에는 안나푸르나에서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기준이 됐다고 한다.
그때의 경이와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와 작품으로 그가 전시를 기획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7월 28일까지 여는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The moment, we awe)’. 한국과 중국 작가 3명씩 회화, 비디오 및 설치, 조각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20∼40대 작가들의 작품이 경탄까지는 아니더라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본관에는 각국의 동전을 망치로 두드려 납작하게 만든 후 사포와 칼로 반들반들하게 닦은 표면에 중국 고전 속 이야기를 그린 니요우위(29)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갤러리가 문을 닫고, 주변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작업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자 “돈으로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동전 작업을 시작했다고.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이용백(47)은 조각 ‘피에타’를 전시장 옥상에 설치했다. 실내에는 인공 물고기를 그린 회화 ‘플라스틱 피쉬’를 걸었다. 그의 미디어 설치작품 ‘브로큰 미러(broken mirro)’ 시리즈는 국내 처음 소개된다. 거울을 보고 있는 중에 갑자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금이 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신관에서는 재독 작가 이석(37)이 현실과 허구,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회화 작품을 내놨다. 지난해 광주 양산동 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인 허수영(29)은 이곳의 사계절 풍경에 식물도감과 곤충도감의 생물들을 그려 넣은 작품을 선보인다. 새싹이 돋아나고, 신록이 무성해지다, 노란빛으로 물들고, 눈발을 맞으며 묵묵히 있는 자연이 경이롭다.
중국 작가 진양핑(42)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포착한 장면을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을, 치우안시옹(41)은 일일이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작업을 소개한다. 윤재갑 큐레이터는 “요즘 현대미술이 너무 개념적이어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감동이나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