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아이디어 실현”… 獨, 창조적 창업 뜬다

입력 2013-06-23 18:08 수정 2013-06-23 21:59


철학의 나라 독일은 예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에 관대했다.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에 지속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독일은 산업 강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엔 매출과 이익만을 추구해 왔던 기존 창업의 틀을 벗어나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중시하는 창조적 창업이 뜨고 있다.

지난 3월 25일 국민일보는 독일 베를린의 창업정신재단(stiftung entrepreneurship)을 찾았다. 이곳은 ‘자본 대(對) 두뇌’라는 창업 입문서를 발간해 9만부 이상을 판매하며 독일 창업계의 ‘해리 포터’로 떠오른 프라이 대학의 귄터 팔틴 교수가 세운 창업 컨설팅 기관이다.

매출과 이윤에만 집착하는 기존 경제에 염증을 느낀 팔틴 교수는 1985년 테캄파니(Tee Kampagne)라는 홍차 무역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회사를 세계 최대의 다즐링 티(인도 다즐링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홍차) 수입 업체로 성장시켰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커피, 홍차 같은 다류(茶類)식품의 독일 내 판매 가격이 원산지보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다즐링 티를 직거래로 들여와 생산자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하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농산물 등 분야에서 직거래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는 것에 비하면 30년 가까이 앞선 경험을 가진 셈이다.

‘아이디어가 다른 결과를 만든다.’ 팔틴 교수의 지론이다. 첨단 기술이나 대규모 자본 없이도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으면 충분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제는 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것이다.

재단은 이를 위해 온라인 가상 대학인 ‘창업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팔틴 교수를 비롯한 창업 성공자들의 경험을 배우고 아이디어를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수강생들은 오프라인 ‘기업가정신 실험실’에 모여 서로의 창업 아이디어를 숙성시킨다. 권투의 스파링을 연상시키듯 짝을 지은 창업 지망생들이 상대방 아이디어의 허점을 공략한다.

팔틴 교수는 “실제 창업에 뛰어들었을 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단은 매년 창업정신 회담(entrepreneurship summit)을 열어 예비 창업자들에게 네트워크를 만들도록 돕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우리나라에서 창업은 취업의 어려움 및 고용 불안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대체재 성격이 짙다”며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 부는 창업 바람은 아이디어 실현의 기회로 여겨지며 매력적인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를린=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