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6월 24일] 충만의 은혜

입력 2013-06-23 17:03


찬송 :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260장(통 19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스겔 47장 3∼5절


말씀 : 오늘 본문은 기름 부으심을 ‘물 흐르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000척이면 500미터 정도의 거리로 그 사이에 강물이 발목 수준에서 무릎 수준으로, 허리 수준을 지나 강물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기름 부으심에도 여러 수준이 있다는 것을 물 흐르는 것에 비유해서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과 신앙에서 차고 넘치는 기름 부으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첫째, 진정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에스겔 47장 8∼9절에 등장하는 아라바는 사해를 말합니다. 모든 물이 짜게 변하는, 생명이 없는 곳입니다. 저주와 사망의 세력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흐른 이 강물이 아라바에 이르자 생명의 바다, 번성하는 바다로 변했습니다. 기름 부으심이 강물 수준으로 차올라야 사해를 뒤집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섞여 버리고 맙니다. 성령이 세운 교회에 다니고, 성령 안에서 산다 할지라도 자유케 하며 해방되는 역사가 없다면 지금 상태가 강물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발목이나 무릎, 허리 수준은 휩쓸리기 쉽고, 섞이다 끝나 버립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기독교를 교양과 인격수양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름 부음이 넘쳐나기 위해서는 이성과 지성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차원 높은 기름 부으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회봉사나 구제는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더라도 교회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사람마다 두려워할 정도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행 2:43). 그런 역사가 우리에게도 나타나려면 우리의 사역 가운데 기름 부으심이 나타나기를 진정으로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더욱 뜨겁게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 오직 성령으로만 채워야 합니다. 알코올중독자였다가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진열된 술병들이 눈에 들어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 반대편 상점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5센트만 내고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우유’ 그는 곧바로 그 가게로 뛰어들어가 우유를 마음껏 들이켰습니다. 우유 상점을 나와 술집을 지나칠 때 더 이상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속에는 더 이상 술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도 이와 비슷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온전한 주인으로 자리잡으시면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세상을 딛고 설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성령을 이해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아가 성령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D L 무디는 “과거에 나는 항상 억지로 물을 헤쳐가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나를 운반해 가는 강물이 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이 우리의 현실 속 고백이 되게 해야 합니다. 기름 부음을 더욱 사모하고 성령으로만 채움 받기를 간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성령의 기름 부음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간구하오니 이성과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하심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재우 목사 (대조동 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