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외국자금 당분간 이탈 불가피… ‘ATM 코리아’ 우려
입력 2013-06-21 18:53
‘버냉키 쇼크’가 이어지며 국내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ATM(현금지급기) 코리아’(외국인 투자자가 수시로 돈을 넣고 빼는 것을 의미)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300조원에 이르러 당분간 순유출 흐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300조원 엑소더스’ 시작됐나=미국 유동성의 수혜를 받았던 신흥국 금융시장이 양적완화 출구전략의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한국 증시도 예외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채권 보유액은 총 512조7150억원으로 집계됐다. 2008년 말(208조1743억원)과 비교해 4년5개월 만에 304조5400억원 급증한 수치다.
금융투자업계는 외국인 자금 급증 배경에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있다고 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위기가 촉발된 2008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적당한 투자처를 찾다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대거 흘러들어갔다. 국내 시장도 호황을 맞았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채권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 가운데 미국 자금은 약 114조원을 차지했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양적완화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금융시장으로 순유입된 주식·채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이 1158억 달러라고 밝혔다. 양적완화가 2·3차로 강화될 때마다 우리 증시의 외국인 자금은 2009년 말 352조원, 2010년 말 461조원, 지난 2월 말 515조원 등 최고점을 잇달아 경신했다.
◇‘하락’에 베팅한 외국인=한국경제는 여타 신흥국과 달리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는 만큼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아직 많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노골적인 ‘ATM 코리아’ 움직임은 심상찮은 신호다.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지난달 말 이후 우리 증시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30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금융투자업계는 외국인들이 이미 증시 하락에 ‘베팅’했다고 판단한다. 선물 매도 규모가 역대 최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 선물 매도세는 현물·차익 프로그램 매도까지 부추기며 시장에 압박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흐름이 예사롭지 않자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장관회의에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 유출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소지가 있다”며 “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3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이경원 기자, 세종=이성규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