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닉 부이치치] 하나님께선 사지가 없는 나도 쓰시는데 당신이 못할 일이 있을까요

입력 2013-06-21 17:37 수정 2013-06-21 17:43


팔·다리 없는 복음전도자 닉 부이치치

강연대 앞에 선 한 남자가 있다. 한참 강연하는 도중 몸을 기울여 쓰러진다. 놀라는 청중을 뒤로하고 그는 넘어진 상태로 말을 이어나간다.

“저처럼 넘어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다시 일어서겠죠. 일어나려고 100번을 시도해 모두 실패했다 해서 제가 실패자일까요? 우리는 실패할 때마다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겐 계속 기회가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란 걸 알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시도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마로 자신의 성경책을 딛고 상체를 일으킨 그는 열화와 같은 청중의 박수를 받는다.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나는 것만으로 희망을 전하는 이 사람은 강연가로 잘 알려진 닉 부이치치(31)다. 해표지증(海豹肢症)으로 팔다리 없이 태어나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이 유튜브 등 언론매체에 공개되자 전 세계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 겪기 힘든 고난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과 ‘행복’을 말하며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닉의 연설은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줬다.

복음전도자이자 비정부기구(NGO) 대표로도 활동하는 닉이 최근 신간 ‘닉 부이치치의 플라잉’(두란노)을 들고 내한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라는 닉을 지난 6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계속된 일정으로 얼굴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한 질문엔 지친 기색 없이 청산유수처럼 답했다.

그는 “전 세계 47개국에서 다양한 이들에게 강연했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 청중보다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한국이 선교사를 많이 보낸 국가란 것과 한국교회의 다 함께 목소리를 내 기도하는 방법(통성기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들이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미소 지었다.

사지 없는 소년, 신앙에서 삶의 목적 발견

원래 그의 장래희망은 회계사였다. 평신도 목회를 하면서 병원과 기업 등에서 회계사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 전공도 회계학과 경영학을 선택했다. 이랬던 그가 강연가의 길을 걷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고교시절 닉은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학교 건물 관리인 아놀드씨와 가깝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앙이 깊었던 아놀드씨는 그에게 점심시간에 ‘그리스도인 대화 모임’에 참여해 볼 것을 권유했다. 닉은 아직 신앙이 깊지도 않은 데다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사실 더 큰 아유가 있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던 그는 거룩한 말만 골라 하는 ‘꼬마 목사’ 역할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닉은 ‘팔다리 없이 살아온 나의 삶’을 주제로 10여분간 연설했다. 그가 생각하기엔 거창한 신앙고백도 아니었건만 이야기를 들은 대다수 친구들은 연신 눈물을 닦았다.

“15세 때 요한복음 9장을 읽고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졌지만 제가 태어난 목적을 알게 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제 이야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변하는 걸 보면서 제게 강연의 은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복음전도자로서의 소명도 이때 발견했고요. 하지만 19세 때는 지금처럼 제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었죠.”

이날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교회, 학교 학생회, 봉사단에 와 다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면서 그의 강연 인생이 시작됐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그는 무대를 넓혀 더 많고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과 신앙을 나눴다.

“기독교인이 아닌 청중에게도 상황을 보며 하나님을 전합니다. 종교적 이야기가 결례가 되는 곳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곳이든지 제가 개인적으로 만난 하나님과의 경험과 말씀을 믿음으로 겪게 된 변화에 대해 밝히고 있어요.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연설가로서 자신의 삶과 믿음을 나누지 않는다면 진실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인지 강연이 끝난 뒤 제게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묻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더 좋은 계획이 있다

강연할 때마다 닉은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외모나 지위, 능력과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예수께서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길 원한다.’ 그는 이 말을 들을 때 청중이 변한다고 했다.

“전 500만명 이상의 청중에게 ‘사지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쓰시는데, 당신이 못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해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아름답게 창조됐습니다. 세상에 많은 나무가 있지만 이 중에 완벽한 게 있던가요. 모두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어요. 성경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자기 몸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신의 더 좋은 계획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도 신앙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당연히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다고 했다. 그가 쓴 저서엔 사지가 없다는 것 이외에도 닉이 겪었던 어려움이 여럿 나온다. 2010년 강연 DVD를 제작하는 그의 회사 AIA(Attitude Is Altitude)가 빚더미에 올라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절망에 빠진 적도 있다. 당시 그는 아내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고 있었기에 좌절감은 더했다. 이럴 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 4:13). 그랬기에 전 하나님께서 여태까지 절 인도하신 일을 묵상했습니다. 물론 단번에 잘된 건 아닙니다. 두 달간 좌절감에 시달렸으니까요. 하지만 신실하고 은혜로운 하나님은 합력해 선한 일을 이룬다고 믿습니다. 제 경우엔 가족과 나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에게 감정을 털어놓고 기도를 요청했던 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낙심될 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세요. 그리고 필요에 따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것이 전문가의 상담이든, 기도 요청이든 말이지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서도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많은 이들처럼 닉도 ‘저 사람이 평생 날 사랑해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내와의 사랑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 역시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내가 날 사랑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변함없이 절 사랑했습니다. 이때 전 정말 그녀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걸 알았지요. 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신뢰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요.”

카나에를 만난 지 9개월 만에 결혼한 닉은 올해 2월 건강한 아들 키요시를 얻었다.

“아내 뱃속에서 태동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사랑과 감동의 물결이 제 안에 일어났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아들을 못 본 상태임에도 제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건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라 누구도 미리 준비될 수 없기에 저 역시 긴장됐습니다. 저 같은 아이가 나올까 걱정된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아들을 사랑하게 된 절 보며 하나님께서도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을지 알게 됐어요. 저는 아들과 딸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돼 줄 겁니다. 아이에게 성공을 추구라고 가르치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꿈꾸라고 말할 겁니다.”

행복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게 중요

‘희망전도사’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닉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행복이란 당신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에게 가진 계획을 알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좋은 날만 기다립니다. 외부에서 올 행복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물질을 모을까 궁리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나는 팔다리가 없어도, 상황이 좋지 않아도 소망을 가집니다. 제 존재 자체로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지금 행복한가’를 물었다. 희망을 전하는 강연가일수록 대중에게 매사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희망강박증’을 느낄 가능성이 보통 사람보다 높아서다.

“인생엔 시절이 있습니다. 좋은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습니다. 지금 힘들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날이 옵니다. 그래서 제겐 그런 부담이 없습니다. 어떤 압박 때문에 항상 웃어야 하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일 겁니다. 대신 제겐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강연자들이 자신들 말처럼 경건한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합니다. 교만하거나 탐욕과 욕정에 눈이 멀기도 하고요. 많은 이들이 절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전 나쁜 예가 아니라 좋은 예가 되고 싶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저 역시 계속 노력할 겁니다.”

강연뿐 아니라 닉은 나눔을 실천하며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가 세운 비영리단체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은 고아원과 장애인 후원기관 등 10개 이상의 자선재단을 후원한다. 2010년 5월 설립된 ‘닉부이치치아시아재단’은 일본 장애인 단체와 북한 고아원 및 장애인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방한 중이던 지난 8일에는 대북지원 비영리단체인 ㈔푸른나무와 결연하고 매달 평안남도 성천롱아학교를 지원키로 했다. 이때 닉은 가까운 시일 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장애인을 만나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평생 강연가로 살며 전 세계 70억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게 꿈’이라는 닉은 앞으로 종교와 세대를 초월해 희망을 잃은 자나 장애인, 고아 등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책과 비디오, 유튜브와 페이스북 및 각종 언론매체 등에 여러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제 팬 카페에 ‘일분 라디오 톡’을 올려 직접 못 만나도 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요. 교육용 비디오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전수하는 일도 계속할 겁니다. 이것이 제 삶의 목표라 믿기 때문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