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음악가 정추] 부른다이 묘지에 잠든 고인의 마지막 얼굴
입력 2013-06-22 04:06
정추 선생이 떠나던 지난 14일 카자흐스탄의 하늘은 푸르게 맑았다. 흰 구름 사이로 눈부실 만큼 따가운 햇살이 그가 안장된 알마티 근교 부른다이 공동묘지에 내리쬐었다.
고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평소 고인이 좋아했던 라면과 차, 그리고 카자흐스탄 한인일보가 관 속에 자리했다. 조국의 태극기가 관을 덮었다. 땅 속으로 관이 들어가고 흙이 덮이자 부인 나탈리야 야코브레브나씨와 차녀 야나씨 등 유족과 문상객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누구도 소리 내어 흐느끼지 않으며 슬픔을 참았다. 봉분 위에는 빨갛고 노란 꽃들 그리고 선생의 사진이 놓였다. 사람들은 한 명씩 무덤에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장례식에는 손치근 총영사 등 공관 직원, 교민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유족들은 따로 장례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선생이 사망한 다음날 진단서를 받고 바로 장지로 향했다. 조금은 쓸쓸한 죽음이었다.
정추 선생은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의 아블라이하나-쉐프첸코 교차로에서 쓰러졌다. 이 길과 저 길을 연결하는 도로 한복판에서 그는 숨이 멎었다. 북한과 남한, 옛 소련과 카자흐스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처럼 그는 교차로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소식을 들은 교민들은 평소 고인이 주로 일을 봤던 사말 지역의 사무실로 모여 황망함을 달랬다.
선생은 생전에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으면 오늘의 정추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대신 북한에서 잘 나가는 음악가 또는 당 간부가 되어 있었겠지….” 선생을 뵈었던 과거 어느 날,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을 그리며 살게 된 출발점인 모스크바 유학시절과 카자흐스탄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장례가 끝나고 선생의 사진들을 정리했다. 86세 생신을 맞았던 2009년 12월 25일 알마티 시내 프린세스 중식당에서 찍은 사진과 정추 선생 85주년 기념 음악회 모습이었다. 고인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 원천은 조국에 대한 뜨거운 그리움이지 않았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알마티=김상욱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상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