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전자쓰레기

입력 2013-06-21 18:44

전자쓰레기(electronic waste)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수명이 다했거나 기술개발로 외면 받는 컴퓨터, 휴대전화는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연간 5000만t이 쏟아져 나온다. 매년 미국에서만 컴퓨터 3000만대가 버려지고 유럽에서 폐기되는 휴대전화는 1000만대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쓰레기에서 금을 캔다’는 도시광산 산업이 각광받고 있지만 사실 재활용률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냥 매립된다. 선진국들은 컴퓨터 보급, 문맹퇴치 지원 등을 앞세워 저개발국가에 수출한다.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미국의 수출량만 연간 300만t이다.

중국 광둥성 구이유시는 ‘세계 전자쓰레기의 수도’로 불린다. 전자쓰레기에서 금, 은, 구리 같은 금속을 추출하고, 플라스틱을 잘라 재활용하는 업체가 지역경제의 핵심이다. 근로자 15만명이 매년 150만t을 처리해 7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다. 중국 국내에서도 전자쓰레기가 매년 230만t씩 배출되지만 구이유에서 처리되는 전자제품의 80%는 미국에서 수입한다.

전자쓰레기에 들어있는 납,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 나라에서는 염산 용액에 담근 기판에서 금속 성분만 걸러내고 나머지는 마을 주변에 쌓아둔다. 구이유에서도 어린이들의 혈중 납 성분 수치가 심각하게 증가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최근 중국 정부가 환경보호법을 새로 만들어 미국에서 수입하는 전자쓰레기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할 말은 없다. 우리는 연간 250만대의 폐 휴대전화를 중국과 인도 등지로 수출한다. 전자쓰레기에 관한한 악명이 높은 것이다. 1994년에 전자쓰레기 국제 거래를 금지하는 바젤협약에 서명했지만 중고 가전제품을 담은 컨테이너에 쓰레기를 슬쩍 섞는 불법이 기승을 부린다.

녹색소비자연대의 ‘전자쓰레기 제로운동’ 등 의식 있는 사람들의 노력도 많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쏟아지는 전자쓰레기 앞에서 역부족을 느낄 뿐이다. 소비자들이 전자쓰레기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신상품과 새로운 기능만 찾는 의식을 바꾸는 게 가장 급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