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현대판 노아의 방주
입력 2013-06-21 18:21
성서 속 홍수 설화의 주인공인 노아가 지금 방주를 만든다면 한 가지 고민에 휩싸일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은 동물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한 생물종은 170만종 이상이다. 그중 식물, 미생물, 곤충, 어류 등을 제외하고 노아가 방주에 주로 실었던 육상 척추동물과 조류만 해도 2만종이 훨씬 넘는다.
아무리 큰 배를 만들어도 한 척에 모두 싣을 수 없다. 하지만 훨씬 작은 공간에 모든 동물을 보존할 방법이 있다. 유전자 샘플을 보관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 지하 180㎡ 규모 공간에는 액체질소를 담은 스테인리스 탱크를 설치해 동물들의 생체조직과 유전자를 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약 100만종의 동물 샘플을 저장해 멸종되는 동물이 있어도 유전학 연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전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해 전 세계의 다양한 식물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 본토에서 약 1000㎞ 떨어진 북극해 스피츠베르겐 섬의 바위산 지하 120m에는 완벽한 방재시설을 갖춘 저장고가 있다. 축구장 절반만한 크기에 수m 두께의 강화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데다 기밀식 출입구는 유엔과 국제기구가 보관하는 마스터키로만 열 수 있다.
이곳이 국제종자저장고로 선택된 이유는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이다. 저장소 내부온도는 영하 18도로 유지되고 매년 두 차례 공기가 교체되는데, 저온시스템이 고장나더라도 기온이 빙점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어 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또 저장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스발바르 북극곰은 사납기로 유명해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종자 가치가 뛰어난 우리나라 작물 1만3000여점의 씨앗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이것도 못 미더워 과학자들은 달에 저장소를 건립해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 모든 종의 유전자 표본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단체는 미국의 쟁쟁한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문명구출동맹(ARC)이며, 유럽우주국(ESA) 소속 일부 과학자들도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들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네이처는 2050년이 되면 생물종이 지금의 4분의 1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식물은 1년에 4만∼5만종이 사라지고, 어류의 멸종 속도도 굉장히 빨라 이대로 가면 앞으로 50년 안에 물고기가 모두 사라진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