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태원준] 미국 엄마, 프랑스 엄마
입력 2013-06-21 18:21
두 딸을 키우는 미국 엄마 캐서린 크로퍼드는 뉴욕 브루클린에 산다. 그는 브루클린을 ‘세계 헬리콥터 부모들의 총사령부’라고 표현했다. 이 중산층 동네의 엄마들은 하교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과자를 서너 가지 싸간다. 한 가지만 가져갔다가 맘에 드는 게 없다고 아이가 성질을 부릴까봐.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데 그 아이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이 엄마,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프랑스 부모를 보고 질투에 눈이 뒤집혔다. 그들의 아이는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샐러드를 던지지도, 심지어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손가락 대신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크로퍼드는 브루클린에 꽤 많이 사는 프랑스 가정을 관찰하고 직접 파리에 가서 프랑스 육아법을 염탐했다. 이를 두 딸에게 적용한 미국 엄마의 프렌치 육아기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를 썼다. 책에 묘사된 두 나라 임신·육아 문화는 이런 식이다.
미국 여성과 프랑스 여성이 임신을 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미국 의사: “어제 와인을 마셨다고요? (아주 시니컬하게) 아기한테 ‘태아알코올증후군’을 선물하셨네요. 이제 그 죄책감을 안고 사시면 됩니다.”
#프랑스 의사: “(굉장히 엄한 표정으로) 와인은 절대 빈속에 마시지 마세요. 음식도 함께 드세요.”
두 임신부는 임신·출산에 관한 책을 샀다.
#미국 책: “케겔운동(골반근육운동)을 계속 해야 출산 때 아기가 수월하게 나올 수 있다.”
#프랑스 책: “적절한 흉근(胸筋) 운동을 해야 가슴을 탱탱하게 유지할 수 있다. 임신 중에도 외모를 가꿔야 한다.”
두 여성의 아이가 두 살이 됐다.
#미국 엄마: 이미 육아 서적과 블로그를 탐독해 ‘미운 두 살(Terrible Twos)’의 증상을 숙지한 상태다. 아이가 두 살이 되면 통제하기 어려워지는데, 이는 화학적 세뇌작용(뇌가 갑자기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호르몬 이상) 탓이므로 불가피한 성장 과정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의 말썽을 견딘다.
#프랑스 엄마: ‘미운 두 살’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간혹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도 절대 달래러 가지 않는다. 아이가 피를 흘리지 않는 한.
어느 날 아이가 왼쪽 신발을 굳이 오른발에 신겠다고 고집한다.
#미국 엄마: “(동네 아줌마들에게) 우리 애는 무척 창의적이에요. 상상력을 가로막지 않으려고요.”
#프랑스 엄마: 그냥 신발을 벗겨서 맞는 발에 신긴다.
두 나라는 육아의 관점이 다르다. 미국 가정은 아이가 주인공이고, 프랑스는 엄마가 사령관이다. 미국 아이는 최대한 자유롭게 창의력과 개성을 북돋워줘야 할 대상이지만, 프랑스 아이는 아직 미숙해서 올바른 행동을 배워야 하는 존재다.
미국 엄마는 새로운 육아법과 육아용품에 극도로 민감한 반면, 프랑스 엄마는 궁금한 게 생기면 자기 엄마한테 물어본다.
미국 엄마들이 이렇게 된 데는 육아산업도 큰 몫을 했다. 미국은 독립의 땅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를 떠난 이들이 처음 겪는 임신·육아를 감당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이는 거대한 육아시장을 창출했다. 자본주의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야 유지된다. 프랑스 부모처럼 아이를 대한다면 이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예비엄마에게 육아용품 선물하는 ‘베이비샤워’도 육아업계가 쏟아내는 수많은 상품을 소화하느라 생겨난 풍습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엄마들이 오버랩되는 건 미국 엄마 쪽이었다. 아이를 위해 월세살이를 마다않는 ‘헌신’이나 몇 백만원짜리 유모차를 품절시키는 ‘사랑’이 미국 엄마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 6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니 안 닮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 한국 엄마들이 요즘 프랑스 엄마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3월 출간된 책 ‘프랑스 아이처럼’이 엄마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석 달 만에 ‘프랑스 아이들은 왜…’가 번역돼 나왔다. 모두 미국 엄마가 쓴 책이다. 영어권의 ‘French kids…’ 타이틀이 붙은 책마다 국내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마도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럽의 재발견’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복지를 얘기할 때면 당연히 스웨덴을 예로 들고, 독일의 강소기업을 말하지 않고는 경제를 토론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식 질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한국, 이제 육아 세미나에선 너도나도 프랑스를 언급하게 될 듯하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