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이모님’들의 반란을 지지함
입력 2013-06-21 18:21
몇 해 전, 남녀노소가 섞여 답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한 여대생이 나를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까무러칠 뻔했다. 당시 내 조카들은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더 보는 듯한 그 호칭은 억울했다. 내심 불쾌하기까지 했다. ‘웬 이모님? 차라리 아줌마라고 부르지….’ 그래도 커리어 우먼으로 보여 ‘아줌마’보다 격상시켜 ‘이모님’이라고 불렀을 거라고 사람들은 위로했다.
이모. 엄마의 여성 형제를 부르는 이 호칭은 얼마나 푸근한가. 결혼 후 남자 형제보다는 자매끼리 더 자주 오가는 가족문화 때문인지 이모는 고모보다 어감이 더 친밀하다. 호칭이 주는 매력 덕분인지 혈연적 용어인 이모는 이처럼 아줌마를 대용하는 사회적 용어로 다양하게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저는 우리 애 봐주는 ‘연변 아줌마’한테, 이모님이라고 불러요. 그게 서로 좋잖아요.”(후배 직장여성)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선 가사 도우미가 필요하다. 대개 어머니나 언니 등 친정식구 신세를 지는 게 수월하다. 그런 연장에서인지 가사·육아 도우미를 ‘이모님’으로 부르는 화법이 6, 7년 전부터 등장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거래 관계에 피붙이 냄새를 풍김으로써 존중의 의미를 담는 한편, 내 아이에게 진짜 이모 같은 손길을 유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계산이 깔린 ‘호칭의 정치’인 셈이다. 그래봤자 갑과 을의 관계다. 여대생으로부터 이모님으로 불렸을 때 느꼈던 불쾌감의 정체는 이런 내막 탓일 것이다.
그 ‘이모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여성 가사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파출부, 간병인, 베이비시터 등으로 통칭되는 소속 회원들의 명칭 변경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창립된 이 단체의 제안은 ‘가사관리사’ ‘산후관리사’ ‘재가보육사’ 등이다. 이 단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제1회 가사노동자의 날(16일)에 즈음해서는 국회를 찾아가 일반 노동자와 같은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사회보험 적용 등의 법적 보호를 촉구했다.
편집국에선 관련 기사가 나간 후 ‘가사관리사’ 등의 생경한 용어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럼 주부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 거야?” “가사관리‘인’도 아니고 가사관리‘사’네. 그것도 변호사 의사처럼 잘나가는 ‘사’자 돌림이구먼.” “호칭이 바뀐다고 대접이 달라질까….”
호칭은 사회 인식을 담는 그릇이다. ‘노인’을 ‘어르신’으로,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고쳐 부르는 것은 호칭 변경을 통해 비하의 인식을 개선시키겠다는 의도다. 이런 계몽운동도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명칭 변경과 함께 제도의 차원에서 권리보호에 접근하는 건 잘한 일이다.
다시 명칭 문제로 돌아가 보자. 잘 몰라서 그렇지 밥하고 청소하는 가사일도 프로의 세계다. 반나절 계약 시간인 4시간 안에 ‘고객’의 여러 요구에 부응하는 건 체계적 동선관리나 시간관리가 없으면 쉽지 않다. 더욱이 고객의 맘에 들게 표 나게 하기 위해선 노하우가 필요하다. 가사도우미가 아니라 가사관리사라고 전문직 냄새가 나는 ‘관리’라는 용어를 쓴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국내 가사노동자는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수요는 증대할 것이다. 집안일이 더욱 사회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자신들의 직업에 전문성을 기하려는 ‘이모님’들의 프로의식이 반갑다. 파출부가 아니라 가사관리사로 불러 달라는 그들의 권리선언에 박수를 보낸다.
손영옥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